격벽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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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벽
=조용미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가 얼마나 깊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출렁여야 하는 걸까
피사로의 그림 속 나무들처럼
서 있는 겨울
색채를 만지면 감정이 자라난다
붉고 푸른 색의 나무들처럼 가만 서 있어도 천천히 끓어오르는 온도가 있다
언젠가는 마음을 만질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방사선이 지나간다, 머문다,
없다,
냄새도 색도 형태도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면 구토를 한다 안개상자를 만들어 그것의 흔적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풍덩풍덩
문학과지성 시인선 602 조용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 24-25p
얼띤感想文
격벽隔壁은 벽을 사이에 두는 것으로 칸을 만들기 위한 벽이라 보면 된다. 그러니까 시적 주체는 지금 좌측 침대에 있거나 누워있고 시적 주체가 마치 간병인이라도 온 듯 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시적 주체는 현실의 어떤 고통에 대해 감내하여야 하나 그것을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자꾸 과거에 몰두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몰려온 현재를 그렇게 차갑게 보지 않으려는 시적 주체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은 시다. 왜냐하면, 시 2연에 피사로의 그림 속 나무들처럼 서 있는 겨울로 시적 주체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쓸쓸함. 고요 적막함 느낌 가운데 정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겼으리라 본다. 참고로 까미유 피사로는 일각에서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프랑스 화가다. 1860년대 후반부터,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세잔과 고갱이 스승이라 부를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피사로를 숭배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시어는 ‘방사선’이다. 물론 방사성 원소의 붕괴에 따라 물체에서 방출되는 입자 방사선放射線이 아니라 오히려 모 방方에 죽을 사死 샘 선腺 방사선方死腺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그러니까 격벽을 두고 시 주체가 갖는 시 객체의 반응 정도다. 그러나 시인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이 없음을 직감한다. 없다, 냄새도 색도 형태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구토를 하게 마련이고 안개상자까지 만든다. 안개岸蓋처럼 보관한다. 한 번 본 것은 지나가고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무덤에 안치한다. 그러니까 현재에 대한 몰입이다. 색바랜 과거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지려면 현재에 몰입하는 수밖엔 없다. 그것은 새로운 안개를 만드는 일이며 하나의 격벽을 깨부수고 또 하나의 성곽을 쌓듯 돌담을 형성하는 일이겠다. 이는 곧 나의 안전이며 장래에 대한 보장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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