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본뜬 것처럼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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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본뜬 것처럼
=신용목
감전된 것처럼 파랗게 질린 여름 잎들이 있다, 태양을 바꿔 끼려다 손을 덴 구름
잠시 불이 켜졌다 꺼지는 현관
목소리에 전선을 깔 수 있다면 환해지겠지 귓속은
머리는
생각은,
어쩌다 떠오른 옛일들이 있다
네 말에 전기가 흐른다면 내 얼굴은 전구처럼 켜지겠지, 뺨을 다 태우겠지
죽어버릴 것이다 가을엔
누군가 잿더미 속으로 들어가 다 타고 만 일기장을 펼치는 것처럼
창문이 열릴 것이다, 침묵이 깨진 것처럼
문학과지성 시인선 606 신용목 시집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119p
얼띤感想文
역모였을까? 아니면 혁명이었을까? 마치 무슨 큰일을 벌이려다가 무언가 들킨 것처럼 아찔한 장면만 떠오른다. 아니 큰일은 분명 있었다. 직감이다. 누가 슬그머니 안을 들여다보고는 그냥 가면 괜찮은 일 그러나 여백과 표백의 붓놀림에서 오는 교감은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고 떠오른 그것은 오히려 현관을 더 어둡게 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귓속은, 머리는, 생각은 맑은 가을 하늘만 그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가끔은 전기처럼 흐르는 길이 없다는 것에 얼마나 안주가 되는지 그러나 21c 네트워크 시대에 앞뒤 어디를 봐도 CCTV는 걸려 있다는 사실, 경찰 공무원 한 명 더 충원하는 것보다 각종 부과한 과태료로 길목마다 더 환한 감시견 다는 일이 오히려 국가 재정수익에 보탬이 되고 그런 거 보면, 좀 더 나아져야 할 길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태양은 유일무이한 존재고 전구는 얼마든지 갈아 끼울 수 있는 문장이다. 대낮 같은 명구 하나 일기를 통틀어보아도 있을까 싶다. 그러니까 침묵을 껴안고 옹기를 빚는 일 다만, 시간 앞에 놓인 강태공처럼 바늘 하나 꿰지 않은 일에 대해서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다. 창 하나 그린다면 나는 뭘까? 그것은 다만 무게다. 배춧잎 한 장에 오롯이 국수가 아닌 오곡밥 한술 뜨는 일 좀 더 나가면 팔작지붕 하나 얹는 것까지 과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 했다. 남은 시간 거저 낚시로 즐길 일이다. 오늘은 왜 이리 탁 막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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