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서식書式 =전지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물푸레나무 서식書式
=전지우
소설小雪 전날, 내리는 빗줄기를 내 안에 들여놓는다
빗물은 빈자리를 적시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줄기를 뻗는거라 생각한다 불안도 슬픔도 빨아들이니 웅덩이가 되었다 웅덩이 속에서 가지를 뻗고 있는 물푸레나무, 동사무소 담장 위에서 명부名簿를 적는다 또박또박 11월의 부재를 기입하고 있다 빗줄기는 금세 여울물이 되어 나의 감각에서 역류해 온다 당신이라는 생장점이 내게서 범람하는 것은 매번 기억의 수위 때문이다 잊고 살아야 하는 일들, 물살이 거세질수록 나는 맨홀의 눈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훌쩍이는 비가 창문을 두드려도, 유리창에 비친 나조차 가물가물해져도 이미 어둠에 뿌리 내렸으니, 물푸레나무 한 그루가 나를 드나드는 것이다 이름 석 자 대신 빈 가지를 머금은 그늘을 이제는 이해해야 한다 당신이 지워진 자리를 맴돌다 물처럼 다시 여기에 고인다
2020년 11월 22일, 소설의 첫 단락이 시작되고 있다
시작시인선 0460 전지우 시집 당이라는 별자리 하나 13p
얼띤感想文
시는 어느 정도 실재 경험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시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이 시는 마치 경험담처럼 닿는다. 한 사람을 보내고 한 사람을 잊어야 하는 마음과 그러나 잊을 수 없이 늘 고인 물웅덩이처럼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살날을 생각하면 맨홀처럼 꾹 덮고 지내야 할 일이며 간혹 써 내려가야 할 일기를 아니 생각할 순 없기에 어둠은 바탕을 이루는 것도 사실이다. 소설小雪, 이십사절기 하나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이때 태양의 황경(黃經)은 240도가 되는 11월 22일이나 23일경, 그렇다. 11월 22일 소설의 첫 단락은 시작되고 있다. 이때 소설은 소설素雪이겠다. 하얀 눈, 바탕을 이룰 수 있는, 생명수와도 같은 소素가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하는 책임과 직무가 있다. 물론 시적 대변으로 보아도 아주 멋지다. 시 객체와의 교감 말이다. 시어 하나 보고 간다. 동사무소는 주민센터다. 하나 이상 모이면 주민이다. 너와 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다음은 시제다. 시제 물푸레나무에서 보듯 그 나무가 어떤 종류며 생계는 어떻게 이루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소리 은유이기 때문이다. 물 풀래? 그래 풀고 싶어. 어떻게 하면 돼? 그냥 읽어. 그리고 비벼서 넣어. 자 잘 봐. 됐지. 응
응 이라는 말, 어느 시인께서 쓴 시도 있다만, 지평선을 두고 혹은 수평선이라 할까? 마주 보는 태양처럼 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