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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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함기석
위안소 지붕에 작은 구름 하나 떨고 있었다
웅덩이엔 앵두 꽃잎 사르르 물결치고
유리창엔 물결치는 유리의 눈
울타리엔 어린 사과꽃들 하얀 소름처럼 돋고
유리창엔 가늘고 긴 유리의 손
구름은 외로웠고 구름은 울기 시작했다
막사 지붕에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지고
꽃피는 유리창엔 꽃피는 소녀들
막사 밑에 버려진 귀엔 개미들이 들끓고
들끓는 유리창엔 들끓는 꽃빛 울음
구름은 사라졌고 천지도 세계도 조용했다
철쭉 꽃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봄밤
알몸으로 도망치는 열다섯 소녀 유리의 맨발
철쭉 야산으로 컹컹 군견들이 뒤쫓고
마취된 유리창엔 마취된 유리의 꿈
아무도 작은 구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문학동네시인선 168 함기석 시집 음시 081p
얼띤感想文
이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뭔가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으로 몰리는 듯하지만, 시의 맥락에서 보면 상당히 지울 수 없는 기억처럼 박히는 어떤 효과를 내고 있다. 또 어쩌면 사회의 한 단면을 고발한 시일지도 모른다. 가령 위안부에 대한 시인의 강경한 어떤 고발적인 내용을 담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시는 역사의 한 단면을 그리는 것과 또 이를 모르는 이가 읽어도 시맥은 잡혀 있어야 하니까 한 문장 한 문장 읽다가 보면 재미라고 하면 역사에 대한 모독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사항, 그러나 무언가 깨친 게 있다면 시작법에 대한 하나의 놀라움을 읽고 가는 것이겠다.
위안소 지붕에 작은 구름 하나 떨고 있었다. 위안소라 하면 전쟁 때, 여자들을 군인들의 성적 도구로 동원하는 곳을 일컫는다. 시 주체다. 작은 구름은 시 객체가 된다. 웅덩이엔 앵두 꽃잎 사르르 물결친다. 이는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시의 역할은 어쩌면 포르노까지 드러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웅덩이와 앵두는 대조적이다. 물론 시맥으로 보아도 시 주체는 웅덩이 시 객체는 앵두 꽃잎이라 할 때 조용한 집에 찾아든 시 모르는 손님처럼 닿기도 한다. 시를 보면 시인께서 자주 사용하는 시어가 보인다. 시인 함기석은 앵두를 꽤 좋아하는 시인이다. 앵두에서 오는 어감과 앵에서 오는 새 소리도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다. 웅덩이는 여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지면을 은유하기도 한다.
유리창엔 물결치는 유리의 눈, 유리창이라는 어떤 투명성을 강조했다면 시의 순결성이고 유리의 눈이라는 소유격 처리에서 유리창이 달리 보이는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리창은 유리의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이중적 다의성을 내포한다. 울타리엔 어린 사과꽃들 하얀 소름처럼 돋고, 울타리는 어떤 한 경계를 나타내며 구속성과 강제나 격리와 같은 감을 불러일으킨다. 시맥으로 보면 시초가 묻은 종이를 상징한다. 어린 사과가 여물지 못한 시 객체의 사유를 상징하며 소름은 지면에 드러낸 미숙한 표현을 상징하겠다. 유리창엔 가늘고 긴 유리의 손, 그러니까 유리의 세계관 즉, 유리창으로 보면 가늘고 긴, 이는 보통에 미치지 못한 어린 그 무엇을 표현한 것이 된다. 시맥으로 보면 글이 좀 부족함이 없지 않아 있다는 뜻이다.
구름은 외로웠고 구름은 울기 시작했다. 어쩌면 구름은 비가 되지 못한 상상의 어떤 뭉치, 뭉치들 검정을 상징한다. 막사 지붕에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지고, 막사라는 시어, 막 갈긴 느낌을 주지만, 위안소의 어떤 장소적 개념을 생각하면 역시 포르노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뒤에 오는 시맥을 생각한다면 막사는 어떤 한 공간적 개념에서 오는 하나의 무대를 상징한다.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구체의 성격을 띤다. 그러니까 구름은 어찌 되었든 간에 구체화 된 것이다. 꽃피는 유리창엔 꽃피는 소녀들, 한 소녀의 세계관에 꿈을 실현하는 문자를 보고 있다. 막사 밑에 버려진 귀엔 개미들이 들끓고, 시의 생명력이다. 주어진 시가 있다면 이걸 뜯어 먹는 개미가 있고 들끓는 유리창엔 들끓는 꽃빛 울음 유리의 세계관은 확대되고 그 울음은 점차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 울음(시)도 언젠가는 사라지듯 세상은 조용하다.
철쭉 꽃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봄밤, 여기서 철쭉 꽃비는 무엇일까? 그러니까 철이 단단한 어떤 어감이라면 쭉은 죽보다 강한 어감으로 닿는다. 칼로 죽 긋는 것처럼 말이다. 꽃비 또한 구름보다는 실현화된 또 하나의 실제적 사건(批評)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이하 단락은 시를 알몸으로 까발리는 작업과 같다. 알몸으로 도망치는 열다섯 소녀 유리의 맨발이다. 열다섯이라는 시어도 그냥 쓰지는 않았겠다. 위안부에 들어간 실지 나이도 그렇거니와 십이라는 완벽성과 다섯에서 오는 여러 의미와 복합적으로 닿는다. 오에 대한 수 개념은 전에도 한 번 썼기에 지나친다. 마취된 유리창엔 마취된 유리의 꿈, 마취痲醉 약물로 인한 의식이나 감각을 잃는 것이지만 사상이나 이념 따위에 의해 판단력을 잃는 것을 말한다.
이후 아무도 작은 구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유리의 예술은 사실 죽은 셈이 된다. 철쭉이라는 세력에 의해 철쭉이 다룬 꽃비에 의해 유리의 꿈은 마취가 된 것이며 유리의 구름은 찾는 이도 없거니와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어떤 기관에서 등단해도 시는 시집은 늦게 내는 것이 좋다. 되도록 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꼭 그것이 충분히 익었다고 생각할 때 출간을 해도 시집은 늘 이른 감이 있다. 아예 내지를 마라! 시집은 아무짝도 필요 없는 물건이므로 거저 삶에 충실하며 기호로 한 번씩 뜯거나 쓰거나 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지 마! 너 죽어. (獨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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