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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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전희진
당신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한 번도 눈 구경을 해 보지 않은 사람처럼
밤새 쌓인 창밖의 눈이 방 안 가득 그 눈부심을 들여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베마리아>를 틀었다가 고음으로 방치되어 확장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팽창이 되어 내가 먼저 끊어졌다가
커피가 식도록 식은 줄도 모르고
창문에 달라붙은 얼음 조각들이 물방울이 되도록
안간힘은 늘 우리 가까이에 머무르고 있군요
지붕에서 한 뭉치의 눈이 폴짝 마른 깃털처럼 뛰어내립니다
하나의 시어가 떠오르지 않아 시집 몇 권을 털었다가
무엇에 갇힌 사람처럼 방구석을 뱅뱅 돕니다
새해에는 시 안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복 받은 사람이 되려고
올해 남은 며칠 열심히 써야 하므로
눈 속에서도 붉은 열매를 매단 산수유나무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딛을 첫 눈사람이 되기 위해
다정한 점심을 어서 끝내고 길이 빙판이 되기 전에 어서어서
휘어진 골목의 눈 위를 뽀드득뽀드득
그런데 당신은 그해 겨울처럼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시작시인선 0440 전희진 시집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84-85p
얼띤感想文
시제가 ‘눈’이다. 바라보는 눈의 방향성을 묻고 있다. 한 사람은 안을 더 다독이며 내심을 채우려는 시의 완숙미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한 사람은 오로지 바깥을 향한다. 바깥의 세계는 눈이 내린다. 세파다. 그 세파에 대한 느낌은 마치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서 있다. 어쩌면 시에 대한 인식과 부지를 논하는 창밖의 얼음 조각이나 마찬가지겠다. 그러나 어느 날,
밤새 쌓인 눈처럼 방 안 가득 내 마음을 비춰주기도 한다. 마치 아베마리아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듯 음악으로 고음으로 읽어주는 듯 그러나 그것은 확장한 어느 몸짓에 불과하고 인식은 멀기만 하다.
커피는 검정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까? 마음을 정립하기에 잠시 진정시킬 수 있는 어떤 작용이라면 역시 창문에 붙은 얼음 조각, 그 조각들의 행로는 내 마음속 고이 녹아든다. 얼음이 물방울이 되는 것처럼 그 과정, 너와 나의 관계 또한 그렇고 我와 非我와의 관계 또한 그렇다.
지붕에서 한 뭉치의 눈이 폴짝 마른 깃털처럼 뛰어내립니다. 지붕은 집을 덮는 덮개다. 각종 눈, 비를 막아주는 덮개다. 그러니까 가장이거나 가장의 역할을 고려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거기서 한 뭉치의 눈이 폴짝 마른 깃털처럼 뛰어내렸다는 것은 혹여 작품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물기가 없는 마름과 살 속 뺀 마름에서 시의 원숙미를 지향하는 쪽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시어가 떠오르지 않아 시집 몇 권을 털기도 했고 무엇에 갇힌 사람처럼 방구석을 뱅뱅 돌기도 했다. 시 안 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과 복 받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작가의 열망이다. 시 안 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은 가히 역설적이다.
눈 속에서도 붉은 열매를 매단 산수유나무처럼, 만인의 눈에 쏙 드는 시의 완전성에 대한 추구와 열망이 들어가 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디딜 첫 눈사람이 되기 위해, 시의 창의성과 독보성을 논하는 일이며 다정한 점심을 어서 끝내고 길이 빙판이 되기 전에 어서어서, 마음에 불을 밝히듯 이 불이 바깥 세계까지 비출 수 있는 경지가 된다면 휘어진 골목의 눈 위를 뽀드득뽀드득 걷는 것과 같이 순탄하기만을 고대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해 겨울처럼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그렇다. 시의 세계는 늘 고딕이며 빙판이며 동면의 세계나 다름이 없다. 그것은 마음을 녹이는 방법과 끓일 수 있는 온도뿐이다. 아베마리아, 시인이라면 누구나 지향하는 곳이기도 하고 커피 한 잔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될 때까지 우리 가까이 머무르고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는 역시 我와 거울 속 非我의 투쟁이라는 사실, 독백과 다름이 없지만, 我가 처한 이 세계를 관조하며 我의 길을 재확인하는 일 그건 죽음과도 같은 나의 약속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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