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백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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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백은선
책 속에서 출렁이는 물을 만났어 몰캉몰캉한 젤리들이 눈 속으로 가득 쏟아졌어 이렇게 고요한 밤에 어떻게 나는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불 속에서 녹아내리는 몸 줄곧 가지고 다닌 비밀과 질문 정말이라면 그것이 정말이라면 물은 까맣고 까만 것은 무한하기에..........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을 비밀과 질문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쉽고 가벼워지는 그것을 어쩔 줄 모르고 공중에 놓여 있던 두 손이라 부를 수 있다면 주머니가 있어 손을 감출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은 형상을 바꾸며 나아갔고 나아가며 멈춰 있었고 물무늬가 그리는 파동이 겹겹이 흔들리며 얼굴을 짓뭉개놓는 동안 울면서 울면서 달리고 달리는 커다란 기차를 생각했어 기차를 끌어당기는 은빛 선로에 대해 생각했어 그 안에 가득찬 빼곡한 숨을 숨찬 주문을 들으며 들으며 귓속으로 쏟아지는 계속되는 것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순환의 지독함과 아름다움을 액자 속에 걸려 천 년 동안 서서히 밝아지는 동시에 스러지는 이미지를 떠올렸어 그것을 온전한 절망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은 없기에 책 속에 머리를 박고 활자를 중얼거리며 기차가 달리는 리듬으로 한 문단 한 문단 달리고 달리며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출렁이는 물속을 들여다보려 애를 썼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심장처럼 물은 검기만 했고 숨찬 내일 무한을 잠시 엿본 것만 같다고 꽃이 꽃꽃꽃꽃 달리고 달이 달달달달 떨리고 숲이 숲숲숲숲 웃어대는 리듬 속에서 숨찬 내일 두 손을 휘저으며 끝없이 두 손을 휘저으며 이렇게 시끄러운 밤 어떻게 너는 꿈을 꾸고 잠을 자는가 그것이 정말인가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고 삿대질을 하며 울던 줄곧 가지고 다닌 두 손
손목을 은빛 선로 위에 둔 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이 가까워지기를
문학동네시인선 195 백은선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044-045p
얼띤感想文
기차처럼 칸칸 채운 몰캉몰캉한 젤리와 젤리들이 아니라 톡톡 다 터트린 옥수수 알알 놓여 있다면 거저 봉지 들고 한 삽씩 한 삽씩 떠서 거기다가 양 주머니까지 가득 채워서 돌아올 수 있을 텐데, 책 속에 출렁이는 것들은 모두 물이라 명명한 시인, 하지만 그것을 알아볼 수 없기에 우리는 케네디처럼 던진 질문과 그 질문을 통해 비밀 한 가닥씩 풀어가는 과정을 겪는다. 물은 하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어떤 진리이기도 하지만 그 진리는 알 수가 없기에 까맣다. 그리고 그것은 무한하기까지 하다. 상상력이란 끝이 없기에 우리는 어디로 빠져들지 사실 잘 모른다. 그러므로 이를 캐는 작업은 질문과 비밀에 아니 비밀과 질문에 있는 것인데 이를 두 손이라 명한다. 두 손은 아마 호주머니가 있다면 감추었겠지, 물의 형질은 곧 바뀌면서도 까맣고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기차는 달리고 있다. 그 기차를 당기는 것은 은빛 선로다. 기차를 얹은 저 은빛 선로를 생각하면 그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무게에 온전히 감당하기까지 하고 끌기까지 하니까, 은빛 선로에는 가득 찬 숨과 빼곡한 숨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숨을 들을 수 있다면 만약 이것이 아름다운 액자 속 걸려 있다고 하면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 그건 아마 절망일 거야, 그러니까 그것을 캐는 작업은 역시 시인이겠지. 그 주문을 외는 작업 또한 시인이겠고 그러면서도 몰캉몰캉한 젤리와 젤리의 밤을 보내고 있는 거야. 그래, 그 비밀을 하나씩 캐는 거야, 그러면 꽃꽃꽃꽃 꽃이 아니라 꽃으로 찍을 수 있고 달달달달 달로 떨리는 것이 아니라 달로 얼어 있을 거야, 숲숲숲숲 웃어대는 일도 숲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며 즐길 수 있을 거야 결국, 시끄러운 밤 두 손을 잡고 숲 속 거닐다가 호주머니에 찔러 넣겠지.
또 하나의 은빛 선로가 반짝거리며 밤하늘에 뜬 손목을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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