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화 =안차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압화
=안차애
아직 상처에서 피냄새가 나는 사람은
사월의 화본역엘 가야 한다
꼭꼭 입 잠그고 고요히 박힌 철길 따라 걸으며
이제 그만 상처의 지퍼, 길게 잠가야 한다
또박또박 밀어올린 눈물은
휘어지는 철길 소실점 밖으로 훔쳐내야 한다
그리고도 남은 피냄새는
외로움으로 빨리 피는 철길 가 야윈 꽂다지 따라
올올이 흔들리며 흩어내어야 한다
내내 마음 시린 것들은 사월 햇살에도 오금이 저려
톡 쏘는 바람에도 여윈 살 뜯긴다
피어나면서 지레 말라버린
바람에 눌리면서
오소소한 소름같이 피어난 연노랑 점묘,
물기 핏기 지워낸 것이
꽃의 본색이라 전해주는 화본역에서
상처는 잘 마른 꽃으로도 핀다
문학세계현대시선집 199 안차애 시집 치명적 그늘 37p
얼띤感想文
시제 압화押花는 꽃이나 잎을 납작하게 눌러 만든 장식품이다. 이 시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시어는 역시 피 냄새, 그리고 화본역일 것이다. 물론 꽃다지와 눈물 그리고 연노랑 점묘라든가 꽃의 본색 같은 것도 있다. 피 냄새, 血이 아니라 紙(外皮)로 닿는다. 그러니까 화본역은 정석이며 근본이자 모델에 가깝다. 화본역엘 가야 한다고 아주 명령조로 말하고 있다. 화본花本, 화본話本, 사월, 사월에서 사의 의미는 여기서 적지 않아도 어렴풋이 밀려오듯이 죽음을 맞기 직전 꽃의 본거지는 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입 잠그고 고요히 박힌 철길 따라 걷는다. 살면서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고 가야 할 것도 있다. 철길, 쌍이지만 함께 할 수 없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끝이 없이 나 있다. 그건 거울과 거울 속 나처럼, 我가 있다면 非我가 있듯이 내 마음은 철길처럼 죽음조차 함께 갈 것이다. 눈물, 어떤 고통인 거 같기도 하고 어떤 노력으로 닿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슴에 묻어 놓지 말고 끄집어내 속을 가볍게 하자는 말이겠다. 그걸 시인은 훔쳐내야 하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러고도 피 냄새가 있거든 철길 가 야윈 꽂다지 따라 올올 흔들며 흩어내어야 한다. 철길 가, 어느 한 범주를 벗어난다. 꽂다지, 맨 처음 열리는 열매다. 무조건 써야 하는 것으로 읽힌다. 올올이 흔들리며 흩어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마음을 비우라는 뜻으로 자꾸 들리고 용불용설用不用說이자, 엥 인자안인仁者安仁이다. 그러다가 세월 가면 어쩌다 꺼내 본 편지처럼 묻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상처로 남았을 것이고 세월 따라 더 마른 압화처럼 굳어 피어나겠지. 물기 핏기 지워내면서 오히려 더 마른 꽃으로 그래 그때는 그랬어, 하며 꽃처럼 피는 날 마음은 한결 가벼울 거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