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소거된 사진 =황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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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소거된 사진
=황유원
이 사진은 음소거되었다 밖에서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두 명의 사제가 천개(天蓋) 아래 담요를 덮고 곤히 잠들어 있을 뿐 그 옆에 개 한 마리 몸을 말고 함께 잠들어 있을 뿐 발전기의 소음 들리지 않는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아 바람은 한 찰나에 멈춰 있어 더 이상 불지 않는다 굳어버린 깃발은 바람이 어떤 온도로 불어오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사원의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맞은편 건물 옥상 바라나시 리버뷰 레스토랑의 푸른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이 모든 것 그 이상을 말해준다 수면은 얼어붙은 듯 잠잠하고 그 위에 묶인 배들의 고요 나는 이 사진을 아직 찍지 않았다
문학동네시인선 177 황유원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 080p
얼띤感想文
인생을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일은 무엇일까? 생生, 노老, 병病, 사死, 관冠, 혼婚, 상喪, 제祭. 이 중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은 무엇보다 죽음이 아닐까. 가족 일원의 죽음은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이다. 나는 보았지만 나를 볼 수 없는 죽음, 그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밖은 발전기가 돌아가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자동차 경적이 있어도 들리지 않는다. 빛을 빛이라 인정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어둠을 어둠이라 판단할 수도 없는 어떤 경계였다. 그 지점에 서서 나는 울었다. 운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살아서 돌아올 것도 아닌 그 선에서 무엇도 인정은 인정할 수가 없는 사진 한 장이었다.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헌신은 무엇이었는지 지원과 관심은 또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던 무지렁이처럼 그 시점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그때 그 현장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때 그 사진을 찍을(認定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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