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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 =변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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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4회 작성일 24-08-04 20:55

본문

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

=변윤제

 

 

정수리에 잎 그림자 몰아치는 날

슬픔이 꼭 휼륭해야 할 필요 없잖아요

 

버려야 될 빗들 화병에 꽂아놓고

새로운 방식의 꽃다발을 만들어요

털 가닥이 쏟아지는 구름

무너지는 겨울 장마의 한편을 헝클어뜨릴 계획이니까요

단정해지는 건 싫어요

당신의 말에 따라 두 갈래로 갈라졌던 길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가르마에 대해

차라리 밀어버리자고요

 

적당히 우스워지며 실패를 사로잡는 법

나무빗의 손잡이를 잡을 때

아직도 난 빗을 숲이라 믿는 사람

화장대에 놓인 숲을 머릿속에 들이미는 사람

딱딱하고 무심한 덩어리, 빗질을 따라 흩어지는 벌레들

이 빗을 망치 삼아 휘두른다면?

당신의 뒤통수, 연약한 구멍의 어딘가를 후려친다면?

코피를 질질 흘리며 저물녘 하늘에 가닿을 거예요

피를 흘리는 일에게, 피를 흘리는 자로서

 

내일은 신년이니까

어제도, 내일모레도, 그제의 그제도 실은 전부 신년이니까

매일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빗이 놓여 있고

그건 우리의 죽은 숲

새로운 띠의 동물이 매일 현관 앞에 죽어 있어요

꼬리가 지평선만큼 긴 흰 쥐

벼랑을 입에 문 갈색 강아지가

매일이 선물이 아니라면 뭐지요?

그 선물이 반드시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요

우린 노을빛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

죽은 동물을 우리 밖에 풀어버리세요

새로운 띠를 간직하는 골목들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 205 변윤제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012-013p

 

 

   얼띤感想文

    내 머릿속이 카페처럼 어느 한 공간이라면 매일 카페를 청소하듯이 이곳저곳 쓸며 쓰레받기에 담아버려야겠다. 아침이면 지난날 다녀간 손님의 발걸음에 이리저리 흩어진 부스러기와 먹다 남은 찌꺼기 그리고 어디서 묻혔는지 묻었는지 모를 머리카락들 그대로 놓아둔다면 머리는 그것들로 터져나가겠다. 그러니까 비워야 한다. 말끔하게 테이블은 테이블대로 있는 자리를 지키고 의자는 의자대로 가지런히 놓아서 다음 손님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야 하므로 말끔히 청소해야겠다.

    그러니까 정수리에 잎 그림자 몰아치는 날 슬픔이 꼭 훌륭해야 할 필요는 없다. 속담에 정수리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까지 흐른다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나쁜 짓 하면 아랫사람까지 미친다는 얘기다. 여기 정수리는 위가 아니라 아래로 보인다. 하나의 정점이자 좌표다. 잎 그림자 몰아치는 날, 잎 한자로 얘기하자면 엽으로 크게는 한 세대까지 볼 수 있는 시어지만 여기서는 낱개다. 슬픔이 꼭 훌륭해야 할 필요 없잖아요. 꼭 무슨 반어적으로 들리는 거 같다. 내 집에 온 손님이면 슬픔이든 기쁨이든 크게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미연에 예시와도 같은 표현임을 알 수가 있다.

    버려야 될 빗들 화병에 꽂아놓고 새로운 방식의 꽃다발을 만들어요. 빗은 머리털 빗는 도구로 곧고 굳은 물체다. 화병은 무엇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지만 그 항아리만으로는 겪은 세계를 그릴 수는 없으므로 빗으로 빗는 일이 생기고 이로 새로운 꽃다발로 세계를 묘사하는 일이겠다.

    털 가닥이 쏟아지는 구름 무너지는 겨울 장마의 한편을 헝클어뜨릴 계획이니까요. 이 문장에선 털과 겨울이 대조를 이루고 있고 쏟아지는 구름이 장마의 한 편과 대비가 된다. 털이 가변적이라면 겨울은 불변에 가까운 성질을 갖는다.

    단정해지는 건 싫어요, 당신의 말에 따라 두 갈래로 갈라졌던 길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가르마에 대해 차라리 밀어버리자고요. 언뜻 읽으면 포기처럼 들리지만, 세상은 양자택일이므로 어느 길이 옳은 길이며 그릇된 길인지 모르므로 딱 잘라서 판단한다는 것은 아직은 이름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경험을 쌓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무모한 발걸음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성공에 대한 확률을 높이는 일은 경우의 수를 늘리는 수밖엔 없으니까.

    적당히 우스워지며 실패를 사로잡는 법. 그렇다. 실패 속에 실수를 줄여나가는 일 그 길밖엔 없으므로 나무 빗의 손잡이를 잡을 때 아직도 난 빗을 숲이라 믿는 사람, 화장대에 놓인 숲을 머릿속에 들이미는 사람, 딱딱하고 무심한 덩어리, 빗질을 따라 흩어지는 벌레들 이 빗을 망치 삼아 휘두른다면? 그건 죽음이겠다. 새로운 빗의 탄생이거나 아니면 망치처럼 거저 화병에 꽂아 둔 한 옴큼의 구름이겠다.

    당신의 뒤통수, 연약한 구멍의 어딘가를 후려친다면? 코피를 질질 흘리며 저물녘 하늘에 가닿을 거예요. 피를 흘리는 일에게, 피를 흘리는 자로서. 그러니까 그건 빗질이다. 년년撚涊 새나가는 수세미처럼 빗기고 벗기고 닦는 일 피를 벗기는 일이자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피를 덧씌우는 일이다.

    내일은 신년이니까 어제도, 내일모레도, 그제의 그제도 실은 전부 신년이니까 매일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빗이 놓여 있고 그건 우리의 죽은 숲 새로운 띠의 동물이 매일 현관 앞에 죽어 있어요. 여기서 신년이라는 시어에 좀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년은 해 년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밟거나 밟았거나 때 묻은 것들 이미 한 번 스쳐 지나간 것들이다. 그러므로 온몸을 통해 지나간 경험치는 하나의 거름망을 통해 정수처리 하여 내놓는다면 다른 사람을 빗길 수 있는 빗으로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그건 일명 시인은 숲이라 명명하기까지 하고 그 앞에 새로 놓일 동물을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 꼬리에 또 다른 이빨이 물고 뜯기까지 하니까 이는 선물이 아닐 수 없는 일이 되며 노을빛 그리는 동물의 왕국을 늘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가지런한 빗을 들고 골목길 나가는 사람을 본다. 잎이 남아돌지 않을 일일 것 같지만 수북이 쌓이는 잎과 잎으로 이룬 세계를 형성한다. 그러면 시의 세계는 번창할 것이며 이는 곧 우리의 문자가 번창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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