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오병량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봄눈
=오병량
아마 나였을 것이다, 밤중에 빗을 든 사람은
그 역시 며칠을 밤새 중얼거리다 울고 말았을 것이다
어떻게 빈 종이만 쓰다듬는 중일까, 책상이 다 뜨거워지도록
그는 다정했지만, 밑줄이 다 망가지도록 제 마음만 달랬다
바람인지, 바닥일지 모를 일이나 무언가는 쓸려와
여리게 밀려난다 빗소리였다
마음을 씻기는
줄곧 살아냈으나 끝끝내 사라지지 않을 늦밤
어미의 혀가 아이의 눈을 핥는다
문학동네시인선 212 오병량 시집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 012p
얼띤感想文
여기서 봄눈은 춘설春雪로 보이지는 않는다. 눈目이 맹아萌芽로 되는 과정 그것이 하나의 씨앗으로 남게 될지 아니면 정말이지 춘설로 남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밤중은 어두운 공간 그 한복판이다. 그러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듯이 사람의 마음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삶은 매번 어두운 길이다. 이는 시가 가야 하는 길이며 시에 부여한 직무이기도 하다. 그 길을 꿰뚫을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삶은 있는 것이 되며 밤새 책상이 다 뜨거워지도록 다정은 다정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겠다. 그러므로 밑줄을 밟거나 밑줄을 타거나 밑줄을 놓는 거기다가 밑줄 놀리기까지 해서 느슨함과 조이는 일, 이는 곧 조율로 갈등을 해소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음은 여러 신발을 겪으며 줄 맞은 병정으로 올곧게 서게 될 것이다. 마음은 칼이다. 떨어지는 칼날이 자꾸 눈에 보인다. 비처럼 그 틈새를 읽을 수 있다면 반듯하여 가차 없는 속도에서 속도를 타는 일절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어미의 혀가 아이의 눈을 핥듯 여린 양 하나가 오늘도 아침을 맞으며 또 걸어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