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새어 나갔는지 혹은 새어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으니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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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새어 나갔는지 혹은 새어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으니
=권혁웅
냉장고의 유혹은 음식이 아니라 영상 2도짜리 냄새에 있다 가장과 드잡이를 놓는 저 힘은 무릇 사타구니를 벅벅 긁은 손으로 부리는 완력이다 가장이 자주 문을 여는 것도 저 민짜의 페로몬 탓이다 수박과 자반과 배추를 한데 넣고 갈아 만든 칵테일, 가장이야 괜히 얼굴을 찡그릴 테지만 사실은 원 샷 후의 추임새에 불과하다 가장의 배로 흘러드는 세월의 물살에 찐다는 투정은 그 유혹을 따기 위한 열쇠어인 셈, 번제(燔祭)보다 무서운 게 그렇게 흘려보내는 관제(灌祭)다 번제는 길길이 뛰며 질투라도 하지 언제 새어 나갔는지 혹은 새어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으니 마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처럼
문학과지성 시인선 384 소문들 권혁웅 시집 37p
얼띤感想文
냉장고는 냉동고와는 다르다. 냉동고가 언 것을 상징한다면 냉장고는 어느덧 신선함을 보장하는 장고다. 그러므로 영하의 날씨보다 영상 2도짜리 냄새 즉 얼 것 같기도 하고 언 것은 아니지만 좀 으시시한 꼴이다. 가장과 드잡이는 드잡이가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짓 혹은 빚을 못 갚아 세간 살림이 틀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가장은 가장假葬으로 임시로 묻는 일이다. 동음이의어인 가장의 여러 뜻과 교차한다. 그러므로 완벽한 죽음에 대한 장례는 그리 쉽지가 않음을 이 시는 보여주는데, 자주 문을 여는 것도 어쩌면 저 민짜의 페로몬 탓이라 하고 사타구니 벅벅 긁은 손 부리는 완력까지 나온다. 그러다가 수박과 자반 배추 한데 어울려 갈아 마신 칵테일까지 등장한다. 수박囚縛은 가두어 묶어 놓는 것 자반紫斑은 얼룩얼룩한 무늬 배추는 돈의 상징과 그 무게감이다. 추임새는 얼씨구, 뭐 좋다 이런 식의 흥 돋우는 말에 불과하고 그 유혹을 따기 위한 열쇠 어란 곧 죽음의 기차를 어찌 탈 것이냐는 고민이겠다. 그러나 번제가 하나의 제물인 양 올렸다면 그것보다 더한 것은 물처럼 당연시 흐르는 일 관제다. 어! 이게 언제 새나갔지 혹 언제 새 들어온 거야,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알리도 없다. 그 사람 시집 낸다고 하던데 그러나 언제 시집을 낸 건지 책은 손에 들어와 있을 때처럼 난감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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