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권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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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권선희
대추나무가 마당 길게 그림자를 그리는 오후
눈이 녹는 들판에 한 무리 까마귀 핀다
빨랫줄에 널어둔 이불이 날려 늙은 자전거를 덮는다
한 노인이 한 노인이 떠난 집 대문으로 들어선다
개집 앞 물그릇 살얼음 풀린다
창비시선 505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권선희 시집 100p
얼띤感想文
짧은 시 하나 골라서 본다. 시제 2월을 전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두 개의 달 2월 그리고 2월이라는 시간적 의미를 부가한다. 대추나무는 대추待秋를 상징한다. 가을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가을은 겨울을 앞둔 계절이자 죽음의 전초다. 나무가 가지는 의미는 우선 식물이라는 점 곧게 서 있다는 점 초식이라 해도 될까! 마당은 우리가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상징하며 그림자는 검정을 상징한다. 그것을 그리는 오후다. 오후 오후吾後처럼 보이고 눈이 녹는 들판에 한 무리 까마귀 핀다. 2월의 눈은 눈 설雪이지만, 역시 두 개의 달 너와 나 피는 꽃 눈 목目도 있다. 역시 하늘 나는 새 까마귀는 검정을 상징하는 말, 빨랫줄에 널어둔 이불이 날려 늙은 자전거를 덮는다. 빨랫줄, 무엇을 씻고 널어놓는 건조대 마음의 정화를 상징한다. 우리말은 참 곱지 않은가! 빨래 달래 줄래 안 줄래 더 나가 걸레에다가 설레기까지 한다. 이불은 두 부처를 상징하고 늙은 자전거 앞바퀴 뒷바퀴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성경 같은 말씀 구체를 상징한다. 한 노인이 한 노인이 떠난 집 대문으로 들어선다. 곧 죽을 사람, 시초겠다. 그 초식이 이미 죽은 초식을 보고 있으니 개집 앞 물그릇 살얼음 풀린다. 개 짖듯 술술 풀리는 존재의 사유가 한 그릇으로 오롯이 담기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이월이겠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잠깐 스쳐 적어본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위해서 꼭 있어야 할 필수적인 존재 그 물, 그러니까 겸손이다. 그러나 물은 흘러 대해로 간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여 다투지 않으며 물은 어느 그릇에 담겨도 그 그릇의 모양을 이루며 항시 수평을 이룬다. 오늘 하루 나는 물처럼 살았던가! 곰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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