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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말 =한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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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0회 작성일 24-07-07 22:55

본문

리히텐슈타인의 말

=한연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한낮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길에 다다른다. 뭔가 생경한 느낌이 입안에 고여 침을 뱉는다. 아무 말이나 할까. 너와 함께 살고 싶어 같은 간지러운 말. 너를 죽여줄게 같은 무서운 말. 그럼 나는 무턱대고 쭈그리고 앉아 오래된 쓰레기를 뒤적인다. 썩은 손가락을 줍거나 리히텐슈타인의 역사책을 줍거나 말라비틀어진 사과를 줍는다. 머릿속에서 이야기는 자꾸 만들어진다. 사랑하는 친구가 실종되었다거나 헤어진 애인을 찾아가 죽인다거나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거나 끝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리히텐슈타인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 말의 울음소리 쪽으로 내리막을 빠르게 달려간다. 분명 나는 도랑에 빠진 아이를 보았고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등산객 조심이라는 팻말을 보았다. 그러나 죽은 고양이를 나무 아래 묻은 건 내가 아니었다.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꺾인다. 출구로 쏟아져나오는 나들이 행렬과 마주친다. 웃고 있는 얼굴이 죄다 거무죽죽해서 불안해진다. 좀더 무심해질걸. 좀더 낙관적일걸. 말은 불안에 빠질 때면 언제나 어둠을 물고 와 금세 사방을 전염시킨다. 커다란 구멍을 삼킨 것처럼 아득해진다. 불안이 제 갈 길로 가버릴 때까지 나는 걸어간다. 걸어간다. 걸어간다. 간다 간 다 다 다 다다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점점 좁아지는 길이 길을 따라 뻗어간다. 가방 속에서 주운 물건들이 수군거린다. 리히텐슈타인. 리히텐슈타인. 주문처럼 읊조리는 리히텐슈타인. 이게 끝이 될까. 이게 죽음이 될까. 기약도 없이 절대로 멈추지 않는 오늘은 과연 어디에 당도하게 될까.

 

 

   얼띤感想文

    리히텐슈타인을 위한 글쓰기 시 쓰기 행렬이다. 그러니까 리히텐슈타인은 시적 장치로 그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행복한 눈물과도 관계없으며 행복을 불러오거나 눈물과도 관계없는 혹은 행복과 슬픔이 상반되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글쓰기다. 그러니까 리히텐슈타인은 수많은 리히텐슈타인을 위한 끝을 맺기 위한 하나의 시작이며 어쩌면 끝을 맺을 수도 없는 시작인 것이다. 무작정 출구로 쏟아져 나오는 나들이 행렬처럼 웃고는 있으나 그것은 모두 검정이라는 상징성을 지녔으며 거무죽죽하나 하나같이 현대인의 삶에서 오는 어떤 불안요소까지 가미한 말의 울음소리와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같이 죽은 고양이를 나무 아래 묻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파내어 다시 해부하기까지 하는 리히텐슈타인을 발견할 때 과연 그것이 걸어가는 것인가? 스스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시인은 도랑에 빠진 아이를 보듯 리히텐슈타인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주문처럼 읊조리는 리히텐슈타인을 바라보며 함부레 못 박고 시작한다. 저기요,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등산객 조심이라는 팻말이 있으니 신발은 꼭 신고 가세요. 그러나 여기까지 리히텐슈타인의 말처럼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거나 손가락 하나가 잘못되었다거나 말라비틀어진 사과를 먹었다는 얘기는 여기에 없다. 그 얘기는 락앤락에다가 봉인되었으니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퍼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손으로 당기는 시늉처럼 순간 엘리베이터 버튼을 허겁지겁 누르는 손가락만 보였을 뿐이다. 불안해 죽겠다. 불안해 죽겠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봐 리히텐슈타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 죽여줄게. 아니 나 살고 싶어, 그리고 앉아 쓰레기통 같은 판을 보며 가슴 졸여야 할 시간은 생경한 느낌일 뿐이다. 결국, 리히텐슈타인은 끝없는 행렬만 있겠다. 그건 我浸 눈 뜨는 순간부터다.

 

 

    문학동네시인선 199 한연희 시집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090-0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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