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에서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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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서
=서효인
그의 농담은 매번 이런 식었는데 인문대 옥상에 앉은 까치를 보고 까치야, 조심해라, 말하는 거였다 그때는 안 우스운 게 없어서 그런 것도 우스웠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 그는 스물여섯 살이었으니까 웃기에 좋은 나이인 그를 안 지 서너 달 된 후배들이 우습게도 저수지 옆에서 그가 죽는 걸 지켜보았고 우리는 영암에 모여 밤새 술을 마시다 장지에 가서 까치처럼 울었다 울음이 그칠까 웃음이 날까 조심하면서 우리는 자주 웃었다 듣기로는 저수지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가 죽었다고는 하는데 알 수 없다 평범한 비극을 지극한 비극으로 만들기 위한 서사인지 알 수 없다 매번 이어지는 젊은 죽음에 불과한지 알 수 없다 그가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시 동아리 선배였다 그가 남긴 시의 구절은 꽤 전형적이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서둘러 떠나는가 알 수 없다 이 시가 죽음에 서정성을 더하는 장치인지 알 수 없다 그해 여름의 저수지를 그해 여름을 알 수 없다 그의 장례식이 끼어 있던 여름방학이 지나고 우리는 캠퍼스에 돌아왔다 괴상한 여름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겼다 우리는 다시 슬플까 조심하며 인문대 앞을 걸어 다녔다
PIN 041 서효인 시집 거기에는 없다 54-56p
얼띤感想文
그녀 혹은 오아시스 / 崇烏[시인의 시를 읽고]
푸른 오아시스를 달고 사는 잎 통통 나무를 보았다 많은 여행객이 오아시스를 지나갔다 무미건조한 사막을 가로질러 가면서 목마름에 대한 갈증으로 오아시스를 찾곤 하지만, 정말 오아시스를 맛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갔다 잎 통통 나무는 오늘 너무나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죽은 지 몇 달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오아시스에 머물며 잎 통통 나무를 끼고 앉아 발 담근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느낌을 말하자면 포근했고 뭉근했다 마치 화로에 군불 지피듯 활활, 한동안 그랬다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저기요 수면제 있으면 하나 주실래요 어제 잠 한심 못 잤거든요 누가 자꾸 제 아랫도리를 건드려요 천국은 그녀의 사타구니처럼 멀고 잠은 오지 않고 여행객만 무심코 지나가는 오아시스다 잎 통통 나무는 부채처럼 서서 지켜보았다 왜 잠이 오지 않았을까, 별 총총 내려앉은 오아시스에 물고기는 저리 많은데 무얼 잘 못 먹었는가! 갈증은 그녀를 모르고 그녀는 갈증 같은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잎 통통 단순미 그 자체였는데 단순미는 끝내 먹지 않았다 잎 통통 나무는 늘 바람에 나부낀다 실루엣 걸친 어렴풋한 단순미를 숨기고 단순미를 내어줄 것만 같은 여자 그래서 오아시스는 늘 푸르기만 하다
위 시인의 시에서 부연설명을 하자면, 시제 저수지는 검정을 상징한다. ‘그’라는 표현은 의인화며 까치는 시 객체다. 그가 죽었다는 말은 매장지로 간 것이기에 인쇄되었거나 시 고체화되었음을 말한다. 저수지에서 죽은 게 아니라 저수지 옆에서 죽었으며 그가 죽는 거 지켜본 이는 함께 머물며 있는 동료 같은 시초들이다. 그해 여름의 저수지를 그해 여름을 알 수 없다. 어느 누군가의 시초는 그 사람만이 알 일, 그러므로 나는 모르는 일이고 거저 나는 까치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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