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의 경첩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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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의 경첩
=조용미
연두의 돌쩌귀와 분홍의 경첩을 단 네 짝 여닫이문을 열고 그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만 허락할 수 있는 능수벚나무의 작은 방이라면,
띠살문의 불발기창으로 어른어른 사람들 지나는 기척이 났다
분홍의 주렴 안에 우리는 서 있고 연둣빛 리본은 봄비처럼 두 사람 위로 내려왔다
새잎과 꽃잎 섞인 긴 가지가 눈동자를 잠시 흔들었던 순간을 두고
당신과 나는 능수벚나무의 바깥으로 나왔다
분홍의 자객이 이듬해에도 찾아올 거라 당신이 믿고 있어 이 봄은 더욱 짧아졌다
얼띤感想文
연두와 분홍이라는 대조적인 색상 구분과 돌쩌귀와 띠살문 같은 우리말은 이 시를 읽는데 무언가 신비스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분홍이 마음을 그렸다면(상징) 연두는 그 마음에 반하는 것으로 역모라든가 반기라든가 아니면 비평 같은 것으로 제유했다고 해도 무관하겠다. 돌쩌귀와 경첩은 사실 그 기능은 같은 것으로 모양만 좀 다르게 생긴 것이다. 돌쩌귀가 바늘처럼 문짝과 문설주를 잡는다면 경첩은 표면적으로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붙은 것으로 보인다. 여닫는 문은 문門과 문文을 오간다. 그 안쪽에 내가 서 있다. 그곳에 잠시 머물러 있으므로 나는 능수벚나무의 작은 방에 있는 셈이다. 능수벚나무, 여기서 능수라는 말도 참 재밌다. 能手 능히 뻗칠 수 있는 손 그 손모가지에 나는 잠시 희망을 걸어보기도 한다. 띠살문처럼 잠시나마 한테 묶은 것 같은 이 찰나에 불발인 듯 아닌 듯 불발기창으로 햇볕은 들고 그새 나는 또 어른어른 아른아른 성장한 눈빛을 갖게 된 것이므로, 한쪽 뇌 관통해 버린 어름 탄에 탄복한다. 이때 분홍의 주렴珠簾은 거저 고대 사슴뿔 왕관처럼 보고 있을 것이다. 다만 연둣빛 리본만이 돌쩌귀가 되었든 경첩이 되었든 삐거덕, 삐거덕거리며 조율한 시간 새잎은 피어나고 꽃잎은 옅은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분홍의 자객은 지나간다. 오늘도 자객처럼 분홍을 맛보고 리본처럼 묶은 이 머리카락 한 자락 쓰다듬고 있었으니까,
봄날은 참 짧다. 여름이 이리 더운 것을
문학과지성사 조용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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