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혹은 고등어, 그후 =천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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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혹은 고등어, 그후
=천서봉
그곳에서는 진화하지 않는 동선을 등에 문신하고 그것을 파루(罷漏)라 부르더이다
관념의 저수지로 다가와 물만 먹고 달아나는 다람쥐의 소슬한 걸음걸이
희미한 의식이 홀로 인적 없는 새벽을 배회하는 휑뎅그렁한 풍경, 속에서 우는 물고기
어둠이 창궐하는 길, 흉가의 방문(榜文)을 모사하는 문장들이 나무마다 걸려 있다
그 시간에 이르면 발목이 없는 악귀와의 장난을 역역(力役)이라 부른다 하더이다
鵲巢感想文
시인의 시집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에서 이 중 한 편을 읽었다. 전에 시인 이장욱의 시 ‘월요일의 귀’에서 한 번 쓴 적도 있다. 동양 철학의 초석이라 볼 수 있는 음양오행설 물론 시는 그 바탕에서 굳이 썼다고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왠지 사뭇 스치는 시어가 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어둡고 밝음이 있다면 일월이며 목화토금수에서 오는 돌고 도는 세상 이치 같은 것 그러니까 목요일은 그 시작점이다. 한 아름의 큰 나무가 있다면 분명 씨앗에서 발아했을 것이고 그러므로 씨앗부터 찬찬히 잘 살피면 분명 큰 성공은 이룬 당사겠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읽은 한 부분을 늘여 쓴 것이다. 다시 또 목요일, 시인은 시제 목요일 혹은 고등어, 그 후라고 했다. 고등어, 물고기의 한 종류며 물고기 어魚와 말씀에서 오는 어語의 매타포적 하나의 동굴을 그린다. 좀 더 나가면 이 시를 읽는 데 있어 역시 언어의 기교라고도 볼 수 있겠다. 파루(罷漏) 이 시어 하나에 순간, 영화 ‘역린’이 지나간다. 아직도 내 머리엔 강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영화다. 서두가 참 웅장하다. 한 나라의 국왕 시해를 모의하는 한 사건, 24시간을 그리는 영화 웅장한 맛에 몇 번을 본 것 같다. 그러니까 시대는 조선 조선이라고 하면 그 옛적 뭐 그런 고리타분한 거 같아도 시의 어떤 신빙성까지 자아내게 한다. 아! 파루 거기다가 물만 먹고 달아나는 다람쥐의 소슬한 걸음걸이, 히히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물만 먹고 간 것인가, 다람쥐인가 하며 생각해 본다. 관념의 저수지를 파고 도는 어가 될 수 없는 수 개 수천만 개의 성을 가진 하나의 개체 鵲巢, 희미한 의식이 홀로 새벽을 향해 걷는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흉가의 방문을 모사하는 문장 같은 것은 없어도 내 가지마다 울림을 준 뭐 그런 시간은 있었기에 악귀처럼 작난作難을 한다. 이는 분명 鵲巢의 亂을 解消한 일이므로 그것을 그대는 묻는다. 역역力役이라 하더이까? 아니올시다. 소인 거저 잠시 머문 과객일 따름이외다.
파루罷漏-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 오경 삼 점(五更三點)에 이르러 쳤다.
문학동네시인선 198 천서봉 시집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0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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