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정두섭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블랙아웃
=정두섭
모르는 사람들이 구겨진 채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라서, 어디서부터 복기해야 잃어버린 내가 복귀하는지 몰라서, 눈칫밥을 해장국에 말아 뒤통수로 먹으며 지금 여기를 하염없이 타전한다. 신 내리는 진도에서 영접한 신을 벗고 맨발로 돌아온 남숙 씨의 주막 민(民)은 멀쩡한데, 적산가옥 이층 창문에 중국인 거리를 걸어놓은 흐르는 물 엘피판은 왜 왼쪽으로 흐르다 끊겼을까. 두-절. 아이를 지우고 누운 여인숙에서 다시 아이를 새겨달라던 너에게로 간다. 밤하늘 담배빵을 헤아리다 쭈그려 앉아 킥킥 끄던 너는 가느스름한 초승을 잡아당겨 손목을 그었다던가. 더벅머리 긁으며 홍등에 들어 부푼 것들을 마냥 터뜨리던 시절처럼 늙은 처마가 매달아 놓은 조등에 감전되어 혁대를 풀고 내 몸에 꽂힌 모든 플러그를 뽑고 꽃무늬 빤쓰와 기하학적 팬티의 어지러운 조합에 대하여, 달거리에서 해거리로 점점 길어지는 울컥에 대하여, 거기 통화이탈지역에서 나는
누구와 대작하였나, 거기 누구 없어요?
얼띤感想文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한 주일 물 흐르듯이 가고 있다. 주말이라 잠시 시간적 여유를 가져본다. 오늘은 기대치 않던 어떤 꽃 편지 받듯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동인이신 정 두섭 시인께서 시조집 한 권을 보내주셨기에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우선 감사 인사를 먼저 전한다.
시집에 수록한 시조 중 한 편의 시를 읽었다. 시제 블랙아웃, 블랙아웃에 대한 의미가 여럿 있어 나열하자면 첫째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기 위한 핵 공격 둘째 무대에서의 암전, 셋째 전파가 갑자기 끊겨 화면이 꺼지는 일 이외, 과음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증과 스포츠에도 블랙아웃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시적 의미로 갑자기 어두워지는 현상쯤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블랙아웃, 검정을 내뱉는 것 퉤, 이는 해장국을 먹는 일이지만 내 속 푸는 일 이 시를 읽는 필자는 그러면 블랙홀이겠다.
시조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해학적이지만, 무언가 소통에 대한 불통, 아니 어떤 단절에 대한 아쉬움 아니 절망 같은 게 느껴진다. 가령 모르는 사람들 이는 마치 중국인 거리를 걷는 자아처럼 어딘가로부터 소통을 원하지만, 마치 통화이탈지역에 처한 나, 눈칫밥을 해장국에 말아 어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가는 만큼 삶의 어떤 절박함 그러니까 현실 탈피와 이상향은 거리가 멀고 도대체 우리는 누구와 얘기를 하는 건가!
이 시조를 읽는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진도는 지역명이지만, 시를 읽는 독자는 진도進度, 일의 나아가는 속도나 정도쯤 신과 남숙 씨의 주막 민(民)은 대조를 이루고, 민은 백성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 속에는 어둡다는 암묵적인 뜻도 있음을 상기하자. 이 층이라는 그러니까 위, 아래의 구조적 배경과 중국인이라는 소통이 불가한 외국인, 엘피판 알과 피처럼 닿는 소리은유, 왼쪽은 역시 좌-별의 세계관(죽음을 상징), 두 절 아이 메타포와 극성, 달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달 그 초승은 낫처럼 보이고 이 시를 읽는 필자 또한 홍등에 부푼 것처럼 마냥 떨리기만 하고 꽃무늬 빤쓰인지 기하학적인 팬티인지 모르는 시 감상문에 젖어 나는 또 누구와 대작하려고 이러고 있는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대작이라는 시어를 잠시 보면, 대작對酌 마주 대하고 술을 마시는 것 대작大作 뛰어난 작품, 물론 술을 마신 거지만 시조의 전체적 흐름을 볼 때 대작과 대작을 오가는 시 독자와의 정교한 교감을 그려 넣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다시 말하면 물 길어 닿는 펌프의 역할(지면)과 한 그릇의 물을 담도록 불러오는 신의 손 기술인즉 그만큼 위아래를 배려한 시 쓰기인 셈이다.
아! 한 잎이다. 뿌리 깊이 내리는 한 잎 한 나무의 한 잎
시인께서 쓰신 시조는 사설시조다. 초장 3.4.3.4 종장 3.5.4.3으로 아주 잘 맞췄다. 중장이 꽤 긴 가슴 깊이 와 닿는 시인의 한 목소리다.
============
시인동네 시인선 233 정두섭 시집 마릴린 목련 17p
형님 시집 출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너무 부럽고 또 감사하고 뭐라 형용할 말이 있을까요. 건강하시고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