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의 시간 =장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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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의 시간
=장수진
우연히 만난 고양이는 접시를 핥고 있었다
다가가니 머그잔처럼 몸을 웅크렸다
이렇게 작아지다니
아이가 붉은 시클라멘을 꺾어 페인트 통에 담그곤
꽃의 색을 지웠다
그 폴란드인이 죽었다
2층 침대 위에서 뻗어 나온 앙상한 손목을 보자마자
모두가 알아챘다
투명한 수용소의 천장
하늘
짐승 같은 추위
얼띤感想文
참 재밌게 쓴 시다. 이 시는 시제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막사의 시간’ 그러니까 어떤 전화번호가 생각난다. 5274 어떤 사채번호로 알고 있지만, 오입誤入 찍사다. 와! 이런 번호를 쓸까 싶어도 누군가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굳이 김춘추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막사 막 싸,
그렇지 우연히도 만났다. 이 시를,
시집 한 권에서 딱 펼치니 이 시였다. 그러니까 운명의 시간 나는 고양이처럼 접-시를 핥고 있었다.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머그잔처럼 직유다. 고양이가 머그잔처럼 웅크릴 수는 없다. 여기서는 회화적으로 흡입과 정독을 암묵적으로 그린 것이다.
시 2연에서, 특이한 시어 하나를 고른다면 시클라멘이다. 덩이줄기 구근식물이다. 이는 소리 은유로 마! 시가 클라카믄 뭐 이런 뜻으로 착용한 것으로 필자 또한 전에 시베리아라고 응용해 본 일도 사실 있다. 꽃의 색을 지웠다. 꽃은 역시 아래층으로 시를 상징한다.
폴란드인이 죽었다. 폴, fall in love에서 fall, 떨어지다, 명사라면 가을 그런 fall. 란드land 땅이다. 하나의 시어로 많은 것을 담았다. 이 시어만으로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김광균의 ‘秋日抒情’이다. 시 한 구절 빌려 쓴다면,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을 생각게 한다.
투명한, 시를 읽는 것과 감상은 역시 투명하며 명징할 때 이를 바 없는 일로 한쪽 뇌에서 바깥으로 훑는 어떤 찌꺼기를 말끔히 긁어간다. 한마디로 말하면 머리가 맑아진다. 수용소의 천장 히히 꼭대기 꼭짓점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하늘 / 짐승 같은 추위 뭘 잡아먹은 것도 아닌데 순간 얼었다. 여름은 끝났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98 장수진 시집 ‘순진한 삶’ 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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