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빛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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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빛
=황인찬
그해 가장 추웠던 날,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
마을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생각에 빠진 사람
무너진 담을 넘어가는 개
겨울의 빛은 손대면 깨질 것만 같다
사람들은 춥다, 추워, 말하면서 자꾸 뛰는데
그게 어쩐지 즐거워 보였고
잠시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두워지는 하늘
낮은 해가 만드는 긴 그림자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고
그날 내가 주워온 것은
누가 이미 손대어 깨진 조각 죽어 있는 빛
얼띤感想文
잠시 머물러 안식을 취하는 자리, 겨울빛이다. 그해 가장 추웠던 날, 시 인식에 가장 근접한 시간대로 어린아이들은 공놀이한다. 공놀이처럼 우리는 무언가 뇌에 자극을 주는 셈이다. 운동은 실전처럼 실전은 운동처럼 하여야 능수능란한 손을 쓸 수 있듯이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에 불과하다. 죽을 때까지 학생의 신분으로 산다는 건 괴로운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공놀이 외, 다른 무엇으로 대체한다면 시는 어떻게 전개가 될까? 물놀이, 아니면 불놀이, 자전거, 오토바이와 같은 구체에 구체를 더하고 바닥을 훑고 바닥을 훑으며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시인은 마을버스라는 어떤 공간을 제시했다. 우리가 노는 마당, 안식을 취하는 자리다. 그것이 안식인지 아니면 일종의 작업 같은 것인지는 크게 상관할 필요는 없겠다. 시는 하나의 놀이방식이기 때문에 한쪽 면 아니 한쪽 담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배양하는 일 순간 개처럼 나는 지금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빛은 시를 상징한다. 얼었고 시적 여러 맥락에서 보면 얇기까지 하다. 얼마나 두껍게 포장하느냐 얼마나 더 뉘앙스를 심어 놓느냐에 따라 시의 가치는 더하기에 역시 작업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보다는 어른스러워야겠다.
사람들, 그러니까 어른에 이르기에는 아직 어린 존재, 추위를 달래는 행위는 추위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어떤 욕망, 그러고 보면 이 말 자체가 어폐다. 그러나 시에서는 결코 어폐라 할 수가 없다. 완전한 어떤 결정체에 이르는 일종의 과정으로 본다면 춥고 꽁꽁 얼고 얼 얼 단단해야 완벽한 것이기에 말이다.
어둠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 낮은 해가 만드는 긴 그림자다. 앗! 이 문구가 이 시 전체를 살린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분명 맞는 말이다. 낮을 어느 쪽으로 보느냐다. 사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그렇다고 따지고 들 필요도 없겠다. 시적 주체냐 객체냐에 따라서 말이다. 시는 늘 거울이기 때문에 무언가 깨뜨린 각성효과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그렇지, 낮은 낯처럼 보이고 낯이라면 면이라 해도 괜찮을까? 낯짝으로 말이다. 해는 그 반대쪽 떠 있는 존재 아직 일깨우지 못한 각종 언어의 바다를 소유한다. 그러면 긴 그림자가 증발한다면 시로 승화할 수 있을까? 그건 독자의 마음일 것이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고, 한 사람씩 승차한 마을버스였다. 담을 넘은 자 개라 했다. 그중 잘 짓는 얘가 있었다. 그러나 발견되지 않은 사람 이 사람은 개, 담을 넘었다고 일단 추론해 본다. 그러니까 딴 세상에 이미 가버린 것이다. 죽음을 맛본 자. 그날 내가 주워온 것은 누가 이미 손대어 깨진 조각 죽어 있는 빛. 겨울빛이다. 시의 순환론적인 특성을 갖는다. 돌고 도는 공깃돌처럼 행성은 무너졌다가 블랙홀이었다가 다시 우주는 생성하듯이 까마득한 흐름만 있을 뿐이다. 시학이 무너질 리는 없으니까!
문학동네시인선 194 황인찬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0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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