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목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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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
=김진수
보이는 게 모두 진실은 아닙니다
죽은 듯 살아 있는,
입고 산 날보다 벗고 산 날이 더 많습니다
산 것과 죽은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파리 대신 침묵을 매달았고
꽃 대신 생각을 피웠으며
열매 대신 아! 하는 경이로움을 매달았습니다
멈추어 선 생生 하늘을 거역하지 않아 좋고, 나이테 늘어나지 않으니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생이고, 다 벗어주었기에 눈앞에 보이는 세상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다 비웠기에 미련도 없습니다 죽비 같은, 딱따구리의 부리 짓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 앞의 나를 바라보며 내가 되는
얼띤感想文
노자의 사상, 적혜요혜寂兮寥兮라는 말이 떠 오른다. 이는 형체도 소리도 없다는 뜻으로 無爲自然을 주장한 노자의 중심 사상이다. 시 고사목은 세상 초연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 그러니까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자세다. 사실 생은 한순간이다. 우리가 산들 몇백 년을 살 것인가! 본시 자연에서 났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분명한 일이고 자연에서 바라보는 세상 아니 이 우주가 덧없음인데 이는 침묵이자 사고의 시작이니 죽비처럼 끝이 있을까!
홀연히 다 내어 준 고사목 같은 시집 한 권,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신 불혹不惑은 그 불혹不惑이 아니었고 지천명知天命은 지천명知天命이 아니었다. 미혹됨과 하늘의 뜻을 거스른 것은 다 욕심 때문이었다. 사물의 속성을 알고 바깥을 제대로 보았다면 분명 잃지는 않았을 일을 시간이 얼추 다 지난 후 깨달으면 뭐 할까?
딱따구리 부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고 명색만 그럴듯하게 갖추는 것을 말한다. 무슨 일이든 기초가 있고 뼈대가 있음인데 그 하나하나를 중히 여기지 못하고 대충 보아온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끄덕끄덕 살아온 생에 시 고사목의 죽비가 벼락 치는 소리로 내 어깻죽지를 난타한다.
시제 ‘고사목’은 시인의 시집에 수록한 첫 시다. 천년의 시간도 허물지 못한 저 꼿꼿함의 ‘반가사유상’, 하늘로 향한 낯짝 ‘무청’, 역시 인생은 혼자라는 데에서 그만 무릎 탁 치고 마는 ‘민어의 바다’ 이외 주옥같은 시편이 참 많다. 지면으로나마 다시금 시집 출간에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올린다.
상상인 시인선 055 김진수 시집 응축된 슬픔이 달다 19p
에구 부러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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