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없는 과일박쥐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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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없는 과일박쥐
=김지은
네 피부의 기후가 그리워
제 2의 인생 제3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쥐를 선물 받기 적당하다는 것 무채색의 팔레트를 찬장에 차곡차곡 쌓고 숲의 허기 때마다 꺼내 굳은 물감을 요리한다는 것이다 나는 쥐를 손질하고 꼬리와 귀를 따로 모아둔다 털이 적은 곳의 식감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창문을 갖게 된다 드릴로 벽을 뚫어 구멍을 만들고 새어 들어오는 빛과 손을 잡으며
신호등 안의 사람에게 휴일을 주자 멈춰 있는 시간은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고 겨우 양팔을 흔들며 제자리 걷기를 할 뿐이지만 그에게는 두 종류의 계절과 두 종류의 시간상 두 종류의 기분뿐일 테니 그에게 종이책에 대해 이야기하자 종이책이 좋아 종이책은 젖지 종이책은 찢어지고 종이책은 다시
태어난다
호랑이나 놀이의 형태로
부여될 것이다 시시각각
빛
무디어지는
숲의 필압 높아지고
격월간 《현대시학》 2023년 5-6월호
김지은
2015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페이퍼돌』 등.
얼띤感想文
꼬리 없는 과일박쥐, 박쥐목에 과일박쥣과의 포유류다. 솔직히 인터넷 조회하다가 알게 되었다. 박쥐 하면 거꾸로 매달려 있는 특징을 생각하면 매우 시적이다. 여기서는 시를 상징한다. 이렇게 써놓는다. 과일을 지난 시간이라면 박쥐를 박지薄志로 보고 싶다. 시는 자위적이며 아니 자위를 유발하는 하나의 물감처럼 말이다. 시는 또 어떻게 읽으면 탐미적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이렇게 쓰는 필압에 의해 털이 다소 적은 곳(나대지裸垈地)을 향해 창문을 만들고 드릴로 벽을 뚫듯 구멍에 안치하는 일, 이 저녁을 보내기 위한 좋은 식감이자 pt처럼 어쩌면 여름이고 어쩌면 겨울이고 또 어쩌면 12시처럼 포갠 시간일 수 있고 또 어쩌면 6시처럼 꼿꼿한 발기일 수도 있음을 역시 기분은 너와 나의 온도겠다. 그 온도 차가 호랑이처럼 사납게 선 비호감 적인 무늬를 낳거나 또 어쩌면 놀이의 일종으로 한 줄기 빛으로 금시 왔다가 가는 행로겠다. 신호등은 보고 있으나 바뀐 것도 알지만 내나 휴일처럼 손의 움직임은 더디다. 이렇게 시를 읽고 있으면 시처럼 한 사람이 지나간다. 그건 다른 사람을 읽고 있는 본인이지만 그 반대쪽 서 있는 이미 죽은 사람이 저만치 건너고 있음을 말이다. 그렇게 호랑이처럼 갈 수 있을까! 강한 인상은 산 자의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지나고 나면 그것은 사랑이었고 왜 그리 따뜻하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마저 든다. 오십이면 무게감도 덜 때가 되었다. 마음의 빚을 줄이려면 때때로 소통만이 최선이다. 거저 묵묵히 담는 일, 그리고 비우는 일 pt처럼 하면 된다. 그렇게 하고 싶다. 손목을 끊으면 얼마나 가벼웠을까! 모두 인위적이며 계획적이며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작품처럼 남은 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은 만큼 불후의 명작을 박아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마음 아파할 이유는 없다. 마음에 꼿꼿하게 서 있는 찬장 하나 가졌으니까! 그 마음과 자주 소통하며 씻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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