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23 봄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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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23 봄
=장석남
유골함을 받아 안듯
오는, 봄
이 언짢은 온기
산 송장들을 만드느라
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
공원의 쇠 울타리 안에서 정원사들은 날 선 법복 차림으로
꽃나무 뿌리마다 납 물을 붓고 있네
화창한 사오월의 봄날에도
납빛 꽃들이 신문지의 비열한 제목처럼 만발해 오리라
용답역 모퉁이에서 검은 무쇠 칼을 움켜쥐고
더덕 껍질을 서걱서걱 긁어 까는 가난한 할머니만이
망명한 봄을 숨겨 간직하였구나
나는 잠시 더덕 내음의 면회객이 되어 저편의 봄을 엿본다
흙 껍질 속의 흰색! 장지壯紙 빛, 신비한 향기를 맡으며
백범白凡의 그 두루마기 빛깔까지 허망 걸어가 보네
유골함의 온기 같은
지금 2023년 봄볕을
기록하여 두네
계간 《문예바다》(2023, 봄호)
얼띤感想文
시인께서 금년에 발표한 시다. 시제 2023을 기준으로 앞뒤 서울과 봄을 배치配置한다. 서울은 시 주체며 봄은 시 객체 격이다. 그러니까 서울은 서울의 특징을 갖는다. 말하자면 온전하며 완전한 덩어리다. 고독을 물고 있고 그 속에 빛나는 유골을 붙들고 있기까지 하다. 송장이면서 산 송장을 보며 이쪽저쪽의 마음을 가늠하는 기준치基準値 역할을 한다.
여기서 기준치에서 사용한 한자 치値는 가치價値다. 사람 인人변에 곧을 직直이다. 직直은 열 십十 완벽을 상징하며 눈 목目 본다는 의미와 숨을 은乚 은닉하기의 뜻을 내포한다. 숨겨진 것을 눈으로 완벽하게 보는 것이 곧음이다. 나무가 곧게 자라도록 심는 것이 식植이며 고근약식孤根弱植, 사방에 곧게 세워두는 것이 치置다. 치置는 넉 사四가 있어 여러 방향을 상징한다. 죽음에서 곧게 세워지는 것을 식殖이라 하고 생식기능生殖機能은 새로운 개체를 만들 수 있는 기능, 하나의 씨앗이 죽어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식殖이다. 그 외 양식장養殖場을 들 수도 있겠다. 치値, 어떤 한 기준을 두고 사람이 곧게 서 있는 자세 그 값어치에 변동이 없는 사항이겠다. 그 기준치는 서울이다.
봄은 산 송장이 오가는 계절이며 죄만 난무한다. 죄는 양심이나 도리에 어긋난 행위로 이쪽과 저쪽의 마음 그러니까 시인께서 말한 공원의 쇠 울타리는 한쪽의 마음을 대변하며 날 선 법복 차림으로 꽃나무 뿌리마다 납 물을 붓는 쪽은 다른 한쪽을 대변한다. 꽃나무는 공원에 소속한 기준치라면 납 물은 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거기에 법복 차림이라니 겉과 속이 다른 어떤 이질성까지 은유한다. 거기서 피어난 것들, 그러니까 언어의 진화 그 끝은 신문지 새로운 문의 세계에 이르는 비열한 제목이라고 까지 만발이라는 통한으로 탄성 한다.
용답역은 쓸만한 문답에 답을 기대하며 머무는 곳을 상징한다면 모퉁이는 죽음을 상징한다. 즉 방房과 다름없으며 사각 모서리다. 더덕에서 오는 심는다는 은닉과 더불어 식물성 그 위 덕을 더 보태야 죽음을 기대할 수 있는 여기에 할머니는 죽음에 더욱 가까운 주름이며 봄은 여전히 망명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두껍고 질긴 장지壯紙가 장지葬地(紙) 같고 백범에서 오는 하얗고 넓은 도량의 돛처럼 그 두루마기 하나 착 펼친 허망은 역시 봄이다.
예언이라도 하듯 필자를 대변한 유골함 하나가 온기 따뜻하게 기록하며 두는 이 시점도 봄 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値千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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