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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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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9회 작성일 25-04-08 10:30

본문

늙어가는 아내에게/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을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거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닥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 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람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그래서,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시감상)


사랑이라는 말, 살면서 수없이 많이 듣고 말하고 마음에 새겼던 그 말, 사랑이라는 말이 어쩌면 끼니와 동의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삼시세끼 챙겨 먹는 간 큰 남편이지만 내가, 우리가 사랑을 끼니처럼 먹지 않았다면  이 순간 서로마주보며 같이 늙어갈 수 있을까. 


사랑,

그 위대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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