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마음** =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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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마음**
=김 현
문을, 닫고 밧줄을, 감고 촛농을, 떨구고 그게 어느새 늙어버린 우리 얼굴 건널 수 없는 얼굴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우리를 본다 우리는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조선은 오래전에 망한 나라 우리는 자학한다 너는 우리 앞에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은 끝났다 이제 시간은 시간이다 사랑했나 먹고살았나 우리가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우리는 정면이다 볼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는 얼굴 녹아내리고 우리는 얼굴을 끝내 묶는다 초는 사라지고 밧줄은 불타버리는데 마음에 딱딱한 촛농이 쌓인다 조상님들을 떠올린다 죽음의 토르소를 껴입고 우리는 그야말로 우리의 얼굴로 너는 너를 보고 나는 나를 본다 촛농을, 감고 밧줄을, 열고 문을, 떨구고
*이게 다예요, 닫힌 문은 닫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아요. 영원히 사라진 문. 우리는 지금 사라지고 있어요. 말하지 않아요. 못다 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이 다예요. 닫혀버린 말. 석고상 같은 입술. 입술의 석고상. 당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당신도 내 얼굴을 볼 수 없죠. 그게 다예요. 우리가 가진 감상적인 얼굴은. 감상할 수 없어요. 닫혔고 굳었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이게 다예요.
**변장이 필요한지도 몰라. 마음에는. 우리는 서로를 바꿔 입은 체로. 살아왔는지도 몰라. 나는 너를 시작하고. 너는 나를 끝내고. 밧줄과 촛불이 우리를 나타내고. 너는 벗고 나는 묶겠지. 너는 흘러가고 번져. 나는 굳어가고 스미지. 너에게 넣고 싶은지도 몰라. 이게 다예요. 우리는 감상에 빠지고 싶은지도. 몰라.
얼띤感想文
심心이 개인의 마음이라면 본本은 공동체의 저변이다. 한 나라의 근본을 일깨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한 선비, 마지막 촛농을 떨구며 조선혁명 선언을 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나간다. 조선 독립을 열망한 애국지사愛國志士였다. 나라를 잃은 한민족의 얼을 고취하기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은 역사를 일깨우는 것이었다. 선생이 집필한 ‘조선상고사’는 우리 역사의 폭을 만주벌판을 넘어 북경에 이르기까지 확대했다. 간刊은 방패 간干에 칼 도刂의 합성문자다. 책을 간행하는 일은 공동체 의식을 분명히 하고 확대하고자 하는 저자의 강력한 수단이 묻어 있다. 간干은 하늘(一) 아래 모두 묶는다(十)는 암묵적인 뜻으로 칼 도刂는 강력한 의지다. 유명 기업인의 책 간행刊行은 기업의 문화를 알리고 방향을 제시하여 사원과 주주께 투자의 안전을 제시한다. 우리가 걷는 길, 걸어가야 하는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 두려움(怯)을 해소하고자 마지막 촛농을 태우며 얼굴을 보는 행위, 다시금 조선朝鮮을 일깨우는 행위
그것은 곧 밝은 빛 아래 나아가 우리의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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