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육식과 피학 =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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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육식과 피학
=오 은
너는 그를 원했다. 길들이고 싶었다. 거둬들이고 싶었다. 너는 뒤춤에 감춰두었던 당근과 채찍을 야심차게 꺼내들었다. 네가 면전에 대고 당근을 시계추처럼 흔들자 참다못한 그가 말했다. 나는 육식주의자야, 5년 후, 너는 괴혈병에 걸려 잇몸에서 피가 나게 된다. 정신을 차린 너는 채찍을 휘두르려고 폼을 잡았다. 채찍이 쩍쩍 공기를 가르자 참을성 없는 그가 말했다. 나는 마조히스트야. 10년 후, 너는 정부로부터 피 같은 봉급을 받게 된다. 네 입이 뒤춤처럼 부끄럽게 씰룩거렸다. 너는 할말을 잃고 탈 말을 거두었다. 당근과 채찍을 길바닥에 버리며 길든 상태로 비로소 길에 들었다. 20년 후, 너는 누구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온종일 미아역에서 헤매듯 노래 부르게 된다. 그가 된 너는 지하철에 올라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쩝쩝 입맛을 다시게 된다. 바람을 휙휙 가르며 거대한 인공 초원을 달리게 된다. 온몸으로 피를 부르게 된다.
얼띤感想文
한 편의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전까지는 피를 말리는 시간과 싸움 같은 거 몇 분의 투자로 피처럼 와 닿아 부조리를 깨끗이 지웠다면 하루는 그야말로 말끔하게 된다. 헛된 시간은 아니었기에 육식은 여전히 안전하며 피학은 건전한 셈이 된다.
말이라는 것, 도비순설徒費脣舌 즉 부질없이 보람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부조리와 같은 일목요연一目瞭然한 레코드 식 면전은 고설요순鼓舌搖脣이다. 인공 초원을 불러오는 발설에서 어떤 배설의 문화는 온몸 가득히 접하는 필자다 보니 피에 두른 것이나 다름없겠다.
이 시에서 너는 ‘말’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람이 내뿜는 소리겠다. 그냥 비명이나 신음 같은 게 아니라 어떤 형식을 갖춘 말놀이다. 너는 그를 원했다. 어쩌면 고독한 시간에 대화와 같은 효력이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부조리는 레코드처럼 몇 번 돌렸으니까 여기서 시인은 시계추라고 써놓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말은 육식주의자다. 즉 동물만이 소리를 낼 수 있으므로 괴혈병에 걸려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것은 완벽한 소리가 아닌 어떤 결핍을 대변한다.
마조히스트는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이상 성욕을 가진 자지만, 여기서는 신체적으로 갖는 고통쯤으로 이를 총체적으로 상징한 시어로 보는 것이 나을 거 같다. 소리의 交合과 配合은 분명 마조히스트에 비유할 만하다. 피 같은 녹도 받을 수 있으니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부끄러운 일이라며 시인은 솔직히 얘기해 놓고 있다.
20년 후, 너는 누구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소리의 소멸이다. 그러나 온종일 미아역에서 헤매듯 노래 부르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하철에 걸려 있는 소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가름하며 입맛을 부르고 바람은 휙휙 지나간다. 분명 그것은 인공 초원을 달리는 소리다. 온몸으로 피를 부른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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