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포트 =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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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포트
=장이지
이건 아는 아이의 이야기. 자기가 대학 때 좋아했던 남자애 이야기래. 아는 것도 많고 취미도 비슷하고, 처음에는 키가 작아서 싫었는데, 이야기하다보니 더 좋아지더래. 뭐더라,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도 함께 보고, D.H. 로렌스 소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대. 차도 마시러 다니고. 네 번째 만나는 날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피포트를 들고 왔다는 거야. 동문회 갔다가 받았다면서 자기는 있다며 주더래. 걔네 집이 신림이잖아.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지. 그땐 이미 그 남자애한테 빠져서 그게 또 좋아 보이더래. 예쁜 것은 아니지만, 실용적이고. 아무튼 그 아인 남자애를 자기 집에 초대했대. 다섯 번째는 자기 집에서 보자고. 자자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게 그 소리지. 매일 문자로나마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역사의 날이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더래. 전화도 받지 않고.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하면서 조마조마했대. 그래, 물론 집은 모르고. 그러고는 끝이지 뭐야. 벌써 십 년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니까. 그러면서 그 아이가 그래. “그 커피포트는 뭐였을까?” 그러게, 그게 뭘까?
얼띤感想文
가슴 뜨끔하게 닿는다. 거저 하루 위안 삼아 읽는 글인 거 같아도 나도 모르는 커피포트 하나를 여기다가 놓는 기분이다. 물론 커피포트 같은 이 마음은 예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실용적이었다면 조금이나마 이 글에 대한 홍보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무튼 지금은 신림을 지나 막 지하철에서 오른 그 한 시간을 커피포트만 생각한다. 그래도 그 아이에게는 커피포트가 있었다는 것으로 기억 한 자락 남았다. 서로의 더 끈끈한 정은 나누지는 못했지만, 한때 잠시 머물다 간 존재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한 시대에 잠시 머물다 가는 커피포트에 대한 또 다른 상징물들이겠다. 시대와 시대를 잇는 커피포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커피포트는 무수히 많다. 우리의 역사를 지켜낸 우리의 민족을 잇게 한 위인들 말이다. 우리의 말과 영혼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자는 더 없는 커피포트겠다. 이 나라를 굳건히 지켜낸 시대적 유명한 장수 을지문덕부터 이순신을 거쳐 이봉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커피포트인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강단 사학은 조속히 정리되어야 할 존재며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기류로 잇지 못한 우리의 역사학에 다만 비통함을 갖는다. 아직도 헤매는 이 시대의 역사관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강단사학=대학의 주류 사학자로 식민사관이 묻은 학자들, 이들 대부분은 조선사편수회의 한때 일본학자의 수제자였던 이병도 제자로 이룬다는 게 그 특징이다. 계보를 오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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