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명상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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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명상
=송재학
물기가 마르지 않아 얼룩달록한 달이다 명상에 도달한 자의 손톱에 머문 흰 달에서는 징 소리가 울리지만 돌아보지 말자 오늘의 달빛은 상현이다 반달이니까 다음 반달과 겹칠 때까지 동안거 행색이다 한지를 잘 접으면 금방 곤충의 날개이듯 달빛이 스민 얇은 꽃잎의 호접몽은 부전나비 일생이다 그러니까 난청의 달빛은 빗살문처럼 번지고 싶고, 달맞이꽃은 달빛으로 가득 찬 창고 하나를 온전히 제 앞으로 옮기고 싶다 꽃의 안쪽에 새긴 결과부좌의 생각을 적는 일도 창고라는 생활이다 달맞이꽃은 달빛의 잉크를 사용한다
얼띤感想文
오래간만에 詩人 송재학 先生의 詩 한 편을 감상한다. 늘 그렇지만, 선생의 시는 처음 읽으면 깜깜한 어둠이다. 그러다가 다른 무엇을 대조하거나 대치해 보며 읽는다. 함수관계를 생각해서 우선은 시(글)와 자아를 떠올려 읽어 보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제3의 관계 그러니까 다른 단어 같은 거를 떠올려본다. 그러다 보면 나름의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선생은 시집에 달맞이꽃으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여기에 모두 부재를 달았는데 이 시는 그중 한 편이다. 명상이라는 시, 달맞이꽃이 하나의 이상향이면 이 이상향은 무엇인가? 명상이겠다.
물기가 마르지 않아 얼룩달록한 달은 시의 초안쯤 보면 명상에 도달한 자의 손톱에 머문 흰 달은 굳은 작품이겠다. 왜 그렇게 보는 것일까? 손톱이라는 분신의 한 조각과 그 성질은 딱딱한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징 소리는 말하자면 自畵自讚이다. 가슴에 띵하게 울림을 받았으니까,
오늘의 달빛은 상현이다. 달이 초안으로 완벽한 것에 이른 것이라면 달빛은 달을 생산할 수 있는 어떤 기반의 소재다. 다음 반달과 겹칠 때까지 동안거 행색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이룰 때까지는 습작으로 노트라는 여기서 시인은 창고라는 말을 다른 용도로 멋지게 써놓고 있다. 참 재밌게 써놓은 재치를 본다.
한지를 잘 접으면 금방 곤충의 날개이듯 달빛이 스민 얇은 꽃잎의 호접몽은 부전나비 일생이다. 여기서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가 아니다. 조용하고 한가한 시인의 마음(閑志)을 대변한다. 한자로 변용해서 그렇지 실지 단어라는 것은 없을 것인데 구태여 없다고 말하는 것도 시에서는 우스운 일이다. 한가한 마음 즉 그 뜻을 잘 접으면 곤충의 날개이듯, 날아가는 마음을 싣고 달빛이 스민 얇은 꽃잎의 호접몽은 그러니까 그 마음이 스민 얇은 종이는 호접몽 접어놓고만 꿈같은 시 한 편, 부전나비 일생이 된다. 전하지 못한 나비(나의 비록祕錄)가 된다. 여기서 굳이 한자를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난청의 달빛은 온전하지 못한 습작으로 달맞이꽃의 이행을 시인은 말하는 것이며 꽃의 안쪽에 새긴 결과부좌의 생각을 적는 일 참선이다. 두고두고 깎으며 보태며 석가모니나 비너스와 같은 다듬이의 이행은 필요하니까,
시의 마지막 문장은 더욱 압권이다. 달맞이꽃은 달빛의 잉크를 사용한다. 시는 시안 혹은 초안의 잉크가 오래도록 묵으며 번지며 바짝 마른 것이 되겠다.
시를 어찌 읽었건 나는 이것이 참선이다. 오늘 하루도 시 한 편 읽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 시를 제공한 시인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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