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정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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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
=정연희
숲의 안쪽 산목련 그루터기 침대,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고양이 마하* 긴 꼬리 높이 세우자 수없는 바람의 혀들이 가볍게 쓰다듬는다 순백의 옷을 걸친 요정, 허리 감긴 나무들이 춤을 춘다 미끄러지듯 빙글 돌아 다리 뻗고 바닥에 누워 배꼽을 드러낸 채 유혹 중이다 떨어지는 햇살 너머 길게 늘인 마하와 내 그림자 둥그런 윤곽선이 닮았다 녹색 캔버스를 걸어 놓고 바람의 붓으로 몽타주를 그린다 얼굴의 윤곽을 다듬고 몸의 곡선을 따라가는 붓의 터치 벌거벗은 마하의 원시림 그 끝에 내가 누워 있었다 서둘러 숲을 빠져나오다가 부끄러운 옷을 그루터기에 흘리고 왔다
*마하: 고야의 그림(발가벗은 마하)
얼띤感想文
시를 읽는다, 그것은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것이다. 무엇을 읽었다는 것에 대해서 자아를 떠올리며 자아의 그림자가 마하처럼 지나간다. 지난번 어느 감상문에서 발각이라는 단어를 쓴 적 있다. 그 발각, 나에게 수유한 흔적 같은 시에서 결국, 흔적을 남기는 일은 어떤 유전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고양이는 시의 객체다. 시인의 시를 감상하다가 고야의 그림 ‘발가벗은 마하’를 오래간만에 보았다. 마하라는 말도 메타포적 시어로 어감을 잘 끌어다 놓았다 싶다. 마하, 그 한 편은 음속에 대한 운동으로 물체의 속도를 이르기도 해서 발각이기 때문이다. 마하의 원시림 그 끝에 누워 있어도 좋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흔적은 삶의 이행 과정이라 보고 싶다.
글 쓰지 않고 보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한 편의 일기라도 쓰며 보내는 일이 자숙이며 자각인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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