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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적다 =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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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3회 작성일 23-01-30 21:50

본문

중세를 적다

=홍일표

 

 

    검은 눈을 헤쳐 보면 흰 눈이 나올 거라는 그런 희망 따위가 지구의 표정을 바꾸는 건 아니겠지만 맨손으로 아침의 껍질을 벗겨서 식탁 위에 올려 놓는다 몇 마리 새가 날아와 햇살 몇 줌 쪼다가 흑해의 어둠 속으로 투신한다 뿌옇게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난파된 배 한 척 인양하여 진흙투성이 바닥을 끌고 나올 때까지 다시 온다 무궁한 세계의 아침과 저녁이 그리고 청동으로 빚어 만든 밤이 쇠사슬을 끌고 저벅저벅 온다 낯익은 미래를 만나는 거다 수백 년 전 깨진 얼굴, 불타버린 심장이 다시 오는 거다 머릿속에 가득한 죽은 글자들 예언자의 입에서 번쩍이는 미래 너의 머리통을 부술 때까지 나는 해안 끝자락에 서서 세기의 어둠에 불을 지를 것이니 용서하라 아니 심판하라 죽어도 죽지 않는 샛별의 언약 아우성과 분노, 회한과 탄식을 끌고 빛을 따라 흘러 다니던 사람들은 혀가 찢겨서 성 밖으로 던져지고, 신의 음성은 갈수록 또렷하여 창과 검을 든 외눈박이 시종들이 몰려가는 곳마다 태양이 죽는다 그래, 그리하여 희망 따위에게 묻곤 한다 오늘의 중세는 언제까지냐고 뭇 생령들을 고문하는 당신의 판타지가 지겹지 않느냐고

    *홍일표 시집, 중세를 적다(민음사, 2021)

 

   얼띤感想文

    중세는 역사 시대의 한 구분을 말한다. 그러나 시에서는 중세의 이미지를 겹쳐 마음에서 한 꺼풀 풀어내는 중세重勢 즉 무거운 어떤 기색을 끌어다가 올려놓는 고문 아닌 희망적 글쓰기를 논한다. 검은 눈과 흰 눈은 대조적이다. 이 시에서 보면 대조적인 시문은 몇몇 널어놓고 있어 시 읽기와 감상에 더욱 재미를 가한다. 가령, 지구의 표정과 아침의 껍질, 몇 마리 새와 햇살 몇 줌 쫀다든가 하는 장면을 들 수 있겠다. 흑해의 어둠 속과 진흙투성이 바닥은 청동으로 빚어 만든 밤이 쇠사슬을 끌고 오는 것으로 그것은 곧 낯익은 미래를 낳는다. 수백 년 전 깨진 얼굴, 불타버린 심장은 시적 주체로 본다면 시적 객체는 너의 머리통 즉 이 시를 읽는 나의 머리통이 될 것이다. 그것은 세기의 어둠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 물론 세기는 연대 상을 구분한 시어가 아닌 어떤 기세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세라, 갑자기 아포칼립토라는 영화가 언뜻 지나간다. 고대와 중세의 만남은 물론 그 뒤 처참한 장면은 그리지는 않았지만, 고대의 시대적 상황과 정세는 분명 잘 그려놓은 영화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단 몇십 명의 스페인 군단이 대군단을 이끌고 온 마야문명을 순식간에 정벌하는 일은 이 영화에서는 없었으니까, 물론 시로 다시 들어온다면, 한 문장의 어떤 기세가 내 머리통에서 무엇을 끌고 올 것인가 말이다. 진수한 완벽한 배 한 척에서 난파된 배 한 척 거기서 피어나는 진흙투성이 바닥인 내 머리통에서 오늘 하루는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용서하라! 아니 심판하라, 죽어도 죽지 않는 샛별의 언약 아우성과 분노, 회한과 탄식을 끌고, 한 줄기 빛이라도 있었던가. 반성하라 태양이 죽은 검은 눈을, 오늘도 여기에 고이 묻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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