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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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
=허연
초봄은 우스웠다. 탈탈 털어도 나는 혼자였다. 친구들은 맥 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거처에서 버려지기 시작했고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독주 몇 잔을 마셨고, 별자리처럼 늘어선 알약도 한 움큼 먹었다. 몸을 일으켰을 때 미세먼지 덮인 사거리에서 빛나는 방주 같은 게 하나 솟아오르는 걸 봤다.
귤 파는 노인에게서 얼마간의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어떤 여행의 추억을 생각했다. 비틀어 짜낼 말조차 말라 있었고, 푹 꺼진 보도블록 위에서 넘어지며 자멸파처럼 웃었다. 흔쾌하지 않은 길 끝에서 방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0킬로쯤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가 신을 영접하고 있었지만 내겐 두렵고 어색했다. 아버지의 단어들이여 안녕.
방주에 오르며
탈탈 털어도 혼자여서 나는 웃었다.
얼띤感想文
늘 오늘 하루는 초봄이다. 초봄을 본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새벽에 어머님 뵈러 가며 또 모셔와서 씻기며 점심을 차려드렸다. 점심을 차릴 때였다. 웬 낯선 번호의 전화가 온다. ‘오빠 뭐해, 나 몰라 자꾸 이른다.’ 깜짝 놀랐다. 나에게 오빠라고 하는 여자의 번호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낯선 전화인 거 같았는데 고향 왔으면 초등학교 와야지 하는 거다. 오늘 총동창회 하는 날인데 몰라? 그러면서 동기, 미숙이 미숙이 몰라 깜짝이야, 미숙이가 어디 한둘 이가, 곰곰 생각하다가 저기 뱀이 미숙기, 오래간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참 그 목소리 들으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나, 종일 어머님과 함께 다녔다. 고속도로에서 3시간, 카페에 잠깐 내 머무는 사무실에서 잠깐, 그리고 잠깐인 곳과 잠깐들 그리고 촌에 모셔다 드린 하루, 초봄처럼 떠올려 본다.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 초봄은 역시 자기가 아닌듯한 어떤 낯선 이의 생활상과 자전거 바퀴에서 오는 구체의 역할 독주와 같은 허와 다른 실의 참된 공부 거기에 대한 알약 같은 시도 읽고 썼다. 미세먼지 같이 꿰뚫어 본 철학과 거기에 덮인 죽음의 거리에서 오는 한 줄기 빛 방주, 네모진 기둥은 별처럼 빛나는 게 또 시인의 일
귤은 밀감이며 노인은 죽음을 상징하며 여행과 추억은 우리의 하루 일상처럼 떠올려 보는 시간상의 무게를 줄이는 일이겠고 폭 꺼진 보도블록처럼 짜 맞추기 위한 작업은 자멸처럼 흐름이라 웃음이 인다. 오십 킬로쯤 그러고 보면 시인께서는 이 오십이라는 시어를 자주 쓰는 거 같다. 나에게서 멈춘 그 왕십리 같은 사거리, 아버지의 안녕 탈 탈 탈 탈
역시 위안한 하루, 나도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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