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법을 위한 기도/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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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북수유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89회 작성일 18-07-10 09:01본문
시작법을 위한 기도
박현수
저희에게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주옵시며
나날이 낯선
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
세상에 서게 하소서
의도대로 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옵시며
상상력의 홀씨가
생을 가득 떠돌게 하소서
회고는
노쇠의 중좌임을 믿사오니
사물에서 과거를
연상하지 않게 하옵시며
밤벌레처럼 유년을
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희망으로
시를 끝내지 않게 하옵시며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 있듯이
영원토록
살갗처럼 시를 입게 하소서
―시선집『詩가오셨다』(천년의 시작, 2008)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인데 시인이 몇 달, 혹은 길게 면 년 동안 시를 한 편이라도 못 쓰면 오죽 답답할까. 아무리 쓰려고 해도 시는 오지 않고 또 끼적거려 놓은 것이 이미 남이 다 밟고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간다면 시인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보통 사람들처럼 재물이나 보화를 달라고 절대자에게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시인의 바람은 오직 시를 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 세상에 없는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시 한 편을 내려 주십사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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