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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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조용미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綠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줄 마늘 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5 조용미 시집 기억의 행성 9p
얼띤 드립 한 잔
마늘의 색상은 하얗다. 그 맛은 맵기까지 하다. 마늘에 닿는 어감은 늘 놓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꿀은 황색에 가깝고 달다. 굳이 한자로 표기한다면 밀봉密封이 아닌 밀봉蜜蜂이다. 유리병은 무엇을 담는 속성이 있어 마음을 상징했다고 보아도 무관하겠다. 내 마음은 나도 모르니 맵기까지 하고 또 어떤 때는 달콤하게 닿기도 해서 위안이 된다. 그러니까 마늘도 꿀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늘이고 꿀인 것이다. 한 이년 묵혀놓으면 형과 질이 변한다. 처음에 써두었던 모양과 바탕이 바뀐다는 말이다. 마늘 같은 하얀색은 초록을 뜻하는 록綠으로 꿀처럼 달콤한 것도 갈고닦을 연硏이 필요하다. 시간은 계속 이을 연聯이 필요하고 그런 동그란 유리병 안에서 마늘 꿀 절임이 되어 간다. 그러므로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라는 이상한 현실에 빠지게 되고 이미 변해버린 맛에 참 묘하게 닿는다. 그러나 그런 마늘 꿀 절임 같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당신을 대하는 자세는 적수성연積水成淵을 이루듯 소리는 맑고 고요하기까지 해서 얼굴을 비추니 선연한 거울같이 나를 대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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