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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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전동균
갈필의 손은 높이 솟은 나무와 멀어지는 산과 대밭 옆 오두막 두칸을 그렸지 허나 보이는 건 바람뿐이야
도둑처럼, 흐린 먹빛 속을 스미어 댓돌 하나 놓고 싶다 닳은 신발 몇켤레, 아니면 밥 짓는 연기라도.....댓잎 두들기는 적요의 소나기떼, 무슨 얘길 하고 있지 않나? 사람이 사람을 만난 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제 그늘마저 삼킨 나무들, 그 아래 취한 낯빛으로 서서 자꾸만 흩어지는 하늘을 품은 적 있나니, 벗은 발목엔 생의 비밀을 엿듣는 푸른 귀가 여럿 돋았나니
심장에 얼음 어는 소리
찢어져 불을 뿜는 댓잎들
창비시선 375 전동균 시집 우리처럼 낯선 13p
얼띤 드립 한 잔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는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천재 화가 전기의 작품이다. 그는 1825년 개성 전씨 가문에서 태어나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아주 거친 붓으로 대충 휘리릭 그은 것처럼 거칠고 어떤 정립된 상황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얼핏 보아도 아! 이게 오두막이고 이건 나무고 댓잎이 보이니 대나무 숲이겠다. 그 뒤 산이 흐르고 그 흐른 정황을 보면 바람이 순간 지나간 듯 매우 추상적이다. 물론 그림을 잘 못 보는 필자의 소감이다. 그것처럼 시인의 시는 마음을 대변한 듯이 그려나간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굳이 너라는 것도 특별히 지칭한 것도 없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보는 윤동주 시인과 같이 그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만 있었을 뿐이다. 도둑처럼 흐린 먹빛 속을 스미어 댓돌 하나 놓고 싶다 닳은 신발 몇 켤레, 시의 고체성에 접근성과 여린 목숨 하나가 간당거린다. 밥 짓는 연기처럼, 가물거린다. 댓잎 두들기는 적요의 소나기 떼만 있었을 뿐 진정 마음에 닿는 귀는 보이지 않는다. 발기발기 찢어놓고 싶은 이 댓돌 하나에 부질없는 신발 하나 들고 내리치면서 나 오늘 어찌 살까 물 흐르고 산 높고 무성하리만큼 복잡한 심장 어는 소리에 어디에라도 고함을 지르고 싶은 당수 나무가 버젓이 바람만 맞고 있다.
*그림=네어버에서 가져온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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