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김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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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김언희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주둥이가 묶인 악어가 있다 꼬리로 벽을 후려치는 악어가 있다 사납게 휘두르는 꼬리가 있다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버썩 씹어버리고 싶은 머리통을 버썩 씹어버린 악어가 있다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머리통이 있다 숨통을 틀어 막는 머리통이 있다 방 안에는 질식이 있다 씹어도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질식이 있다 씹을수록 질겨지는 질식이 있다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삼키려는 죽을 힘과 뱉으려는 죽을 힘이 있다 방 안에는 질문이 있다 산 채 대가리를 쪼개는 질문이 있다 반의 반의 반으로 쪼개는 이쑤시개가 되도록 쪼개는 질문이 있다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초록색 탱자 가시로 우거지는 목구멍이 있다 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다 발골사의 칼날철럼 뼈를 바르는 악어의 눈물이 있다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눈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는 악어가 있다 불타는 악어의 한밤중이 있다 방 안에는 악어가 있다 주둥이가 묶인 악어가 있다 삼키려는 죽을힘과 뱉으려는 죽을 힘이 있다 방 안에는 과호흡이 있다 매 순간이 과호흡이 매 순간이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610 김언희 시집 호랑말코 20p
얼띤 드립 한 잔
방 안에는 답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꽉 틀어막은 벽과 벽 사이 틈도 없는 조밀함과 압착만이 있다. 간혹 외국인처럼 아니 외국인이 잠시 들어왔다가 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시적 주체로 보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외국인은 저녁을 준비하고 뭇국을 끓인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 파가 있으면 파 적을 이루고 양파가 있으면 양파를 다듬는 일, 뚜껑을 들어내고 물을 안치면 잠깐 잠겨 있기라도 해서 살 허물고 뼈 드러난다. 그때 그 순간뿐이다. 악어는 항상 물고 있어야 하며 이 얼얼하게 드러내며 이쑤시개 같은 악어새만 품어야 한다. 삼키려는 죽을힘과 뱉으려는 죽을힘을 다하면 종국에는 죽을 것이다. 목구멍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거의 다 쪼갠 질문은 널찍하게 버려질 것이며 초록색 탱자 가시만 핏빛 어린 스크린을 비추며 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악어의 눈물은 죄가 없으며 어이없는 통장 노릇에 화들짝 눈시울만 붉힌다. 그러므로 뼈가 탄다. 여전히 뼈가 타고 과호흡은 매 순간 흐르고 이상한 곳에서 숨 쉬는 마귀가 방 안까지 밀고 들어와 머리통을 쥐어박고 섹스에 몰두한다. 許劇 이후, 내뱉는 언어가 모두 삼삼하고 처녀가 예사 操身한 것이 부뚜막에 올라앉아 밥을 짓고 밥주걱에다가 혀를 내민다. 오늘 밤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저기 저, 둥둥 떠가는 둥근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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