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김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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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김다연
나의 숲 나의 호수 나의 별은 이제 없다
이야기를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몰라
이야기는 길어진다
점점 나빠진다
더 이상 먹을 수도 말할 수도 없지만 아직 살아 있다
과거의 집합체*이든 가능성의 집합체*이든
좀 더 아름다운 표현에 이르고 싶었을 뿐
남길 것 없는 말의 더미들 속 부스럭거리는 새들......
밤에 짓눌린 날개와 파편의 중얼거림......
나에겐 그 모든 걸 쓸어 담을 아주 큰 봉투가 필요하다
비가 온다 비가 오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어두컴컴하다 입이 마른다
무엇이기 이전에 더없이 낯선 빛뿐인 머리는
오래된 타자기 소리를 낼 뿐
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중에서
타이피스트 시인선 004 김다연 시집 나의 숲은 계속된다 22-23p
얼띤 드립 한 잔
완벽한 한 장의 유서를 쓴다면 나는 어떻게 쓸까? 쓰지 않을까? 써야 한다면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이야기가 너무 길다면 아예 쓰지 않을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몇천 년 전, 여옥의 노래처럼 강만 바라보고 있겠다. 세상은 쓰레기다. 정치, 경제, 사회,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유기물도 하나같이 바른 것이 없고 난잡하다. 쓰레기로 가득한 머리 하나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정립한 질서가 없다. 그러니 여지없이 늘 깨지고 마는 인간이다. 정치가 잘못되었다면 거기에 맞게 처신하고 경제가 잘못되었다면 소비를 줄이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겠다. 잘 난 것도 없이 나대다가 된통 깨지고 마는 통장에 별다른 토는 달지 말자. 여전히 미숙한 한 아이였으니까! 경험과 숙달이 없는 여의도였다. 그러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입 헤 벌려 웃기만 했으니까! 여전히 어두컴컴한 바닥에서 이삭을 줍는다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벽의 심혼은 항시 마르고 닳도록 이다. 나의 숲 나의 호수 나의 별은 이제 없다. 이야기를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몰라 잠시 길어질 뿐, 남길 것 없는 말의 더미와 부스럭거리는 새의 조화 아니 부담에서 냉담까지 밤에 짓눌린 날개만 있었을 뿐 중얼거림의 파편이었다. 기억은 사치며 타자는 타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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