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을리을/ 배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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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41221)
리을리을/ 배옥주
산을 여는 문이 흘러갑니다
열려도 닫혀 있고 닫혀도 열려 있는 의뭉스러움
누구든 드나들 수 있습니다
오름을 내려온 조랑말의 저녁도
한 호흡씩 들어가고
한 호흡씩 나가야 합니다
방목은 풀어놓는 게 아니라 드나드는 것
흙바람도 자모음을 섞으며
모로 누웠다 모로 일어납니다
바람은 쉽게 겹쳐지지 않습니다
새끼 곁을 떠나지 않는 어미의 꼬리질이
한 계절로 들어갔다 한 계절로 나갑니다
구름이 능선의 고삐를 당겼다 풀어줍니다
산 한 마리, 산복도로에 이끌려 갑니다
갈기를 눕힌 순결한 산맥이
리을리을 흘러갑니다
리을리을 평지로 흘러갑니다
2024 시집 (리을리을) 39쪽 전문인용
(시감상)
세상 모든 이치는 순리라는 것에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함부로 거스르지 않는 것. 역행이나 역천 하지 않는 것. 다수가 공감하는 것이 진리라면 그것이 진리다. 본문의 말처럼 닫혀도 열려 있는, 열려도 닫혀 있는 그 시공간에 우린 사회라는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갈기를 눕힌 순결한 산맥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평지라는 곳으로 흐른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구태여 중력의 법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만물의 섭리는 순환이며 규칙이며 공식이다. 사회 전반에 드리운 암울하고 음습한 겨울을 따듯하게 만들기 위해 규칙대로 살면 좋겠다. 리을리을이라는 어감이 웅숭깊다.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배옥주 프로필]
부산, 문학박사. (서정시학)등단. 애지로 평론 등단,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평론집 (언어의 가면), 두레문학상 외 다수 수상, 2024 시집(리을리을)
배옥주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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