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일-묵호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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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일-묵호
=박준
연을 시간에 맡겨두고 허름한 날을 보낼 때의 일입니다 그 허름한 사이로 잊어야 할 것과 지워야 할 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때의 일입니다 당신은 어렸고 나는 서러워서 우리가 자주 격랑을 보던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고 걸음이 질척이다 멎고 마른 것들이 다시 젖을 때의 일입니다 배를 타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와 침과 욕과 돈을 길바닥으로 내던질 때의 일입니다 와중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때의 일입니다 아니 갈 곳 없는 이들만 떠나가고 머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던 때의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감고 있는 일로 당신으로부터 조금 이르게 멀어져보기도 했던,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
얼띤感想文
그해 여름의 일이다. 닫음이 아니라, 의식은 분명 살아 있어 그해 일들을 생각한다. 그러니까 꿈에 그리는 그러한 일들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한 자락의 기억들 그것을 우리는 그해 여름의 일로 기억한다.
오늘의 22년 9월 14일 여름은 끝났다. 완연한 가을임을 확인한다. 하늘이 높고 바람이 분다. 어쨌든 여름의 일은 읽었다. 그러나 나의 여름은 무엇인가? 무슨 자재를 끌어들여야 하며 어떤 소재로 글을 쓸 것인가? 결국은 나의 얘기를 적어야 한다. 쓰는 자의 마음을 노을 가득히 도배한 이 백지에다가 신화 같은 얘기를 타자하며 오늘의 빙산을 수평에 이르게끔 녹이는 일이야말로 쓰는 자의 의무다.
오늘도 글자를 보고 왔다. 점심을 함께 먹었다. 내가 준비한 나물 반찬으로 양푼이에다가 비볐다. 소분 같은 것은 없었다. 거저 글자와 함께 퍼먹었다. 밤새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깨진 변기를 수리하고자 설비업자와 여러 번 통화를 가졌다. 내일 수리하겠다고 했다. 수리가 아니라 완전 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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