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정하고 초조한 빛 =김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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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정하고 초조한 빛
=김미령
서로 꽉 껴안고 있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팔이 다리를 감고 다리가 어깨를 감싸고 있다 두 몸이 하나로 뭉쳐져 머리가 어느 가랑이 사이에 끼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떨어진 책을 엎드려 줍지도 못한다 껴안은 채 그냥 다른 이야기를 짖자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 이야기 껴안은 채 가슴 앞에서 채소를 키우고 개도 키우는 이야기 당신이 첫 문장을 시작하면 나는 다음 문장을 이으면서 함께 종종거리다 발이 엉겨 쓰러지기도 하면서
겨우 일어나보면 따로 떨어져 있어 깜짝 놀라겠지 그러면 얼른 다시 부등켜안자 이 자세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자 서로의 체액을 흔들어도 좋다 흔들다 지치면 햇빛 아래 쉬다가 어디론가 공처럼 굴러가도 좋다 당신의 발로 내 얼굴을 씻고 내 손으로 당신의 구멍을 간질이면서 서로에게 남아있는 여백을 비틀어 그곳에 작은 의자라도 놓으면 좋을 것이다 바람이 머물다 가고 새가 앉았다 가고 구름이 오고 비가 오고
물을 친다 무엇으로든 친다 간헐적인 깜빡임으로 우리의 맞붙은 심장 소리로 손가락을 뻗어 구름의 바닥을 칠 수 있다면 어디든 우리 기별을 전할 수 있겠지 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물을 다해 물이 북이 되어 먼 흙의 아가미가 부풀고 늦은 잠의 덧문이 들썩일 때까지 살과 살 사이에 갇힌 비들이 웅성이며 범람하기 시작하고 꽉 껴안은 자리가 헐거워지면 묶여있던 팔 다리가 스르르 풀려나 어느새 물 사이를 헤엄쳐 다니면서
얼띤感想文
푸른밤을 위해 = 崇烏
뛰어다니는 자 뛰어가고 걸어가는 자 걸어간다 강둑에서 뛰며 오는 저 인간은 나였다 강둑에서 걸어오는 자 역시 나였다 굳는 몸을 위해 더 굳음을 바르게 하려고 어쩌면 죽음을 좀 더 편한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서 나는 걷고 뛰었다 손에 쥔 휴대폰 하나에 음악을 들으며 스치며 뛰며 걷는 자 저 옷깃에 스쳐 지나가도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밤하늘에 달빛 정도 저녁은 그렇게 걷고 뛰었지만 더욱더 그리워지는 건 역시 나였고 종일 지나온 것에 대한 사색과 명상은 있어도 사색과 명상처럼 쉽게 강둑에 놓을 순 없는 일이라서 밤새 또 걷고 뛰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몸이 줄고 가벼워졌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살이 빠지고 홀쭉하다는 것을 교감은 다름 아닌 나였고 껍질에 연연하지 않은 복식호흡에 대한 입맞춤과 심장에 귀환하는 합체에 비로소 아킬레스건이 좀 더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이 강둑 저 건너편에서도 누군가 뛰고 있다 다만, 이쪽을 향해 손짓하는 환영의 눈빛에 잠깐 안도한다 더욱 오래 서 있고 싶어서 좀 더 지구를 밟기 위해서 좀 더 눈빛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꾼 그림자 위에 걷고 뛰는 몸
강둑에 핀 강아지풀처럼 잎 다 떨어져 간 저 벚나무처럼 밤 같은 대추를 맺은 대추나무처럼 걷고 뛰었다 저 흐르는 강물에 내 얼굴을 씻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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