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당나귀 =유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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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당나귀
=유미애
옆모습에 관한 전설 하나 들려줄까? 내 왼쪽 얼굴은 이야기꾼이었지 청중이 던져주는 꽃을 뜯어 먹으며 갈채라는 날개를 퍼덕이며 조금씩 날아올랐지 별에서 별로 옮겨 가는 주인공과 낭만적인 문장들 그러나 빈 화병이 뒹굴 때면 그믐달처럼 희미해져 가는 반대편 얼굴을 내려다보며 눈물 흘렸지 어느 바람 부는 저녁 목젖을 빠져나온 글자들이 입술 밖으로 뛰어내릴 때 그는 새로운 꽃을 찾아 떠났지 거문고를 메고 파교*를 건너, 겨울 골짜기를 헤맸지 마침내 늙은 나무 아래 닿아 거문고를 탈 때 오색 고깔에 필묵을 든 달이 봉우리 위로 솟아올랐지만 긴 혀를 접으며 그가 다리를 건너오고 말았지 벌름거리는 코와 만단설화를 잃어버린 이 행성이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기 때문 내 오른쪽 얼굴이 꽃씨 대신 얼음 조각을 키우고 있었으니까 홀쭉한 그 뺨의 수수께끼가 이야기의 시작이었으니까 파지와 고지서가 얽힌 방 나른한 연필 끝으로 돌아와 제 그림자를 밟고 있는 분홍 발굽, 면할 수 없는 내 죄는 산경山經 해경海經, 괴기 발랄한 그 어떤 이야기에도 미혹되지 못한 것
다시 바람이 부네
*파교 : 맹호연이 첫 매화를 찾아 건너갔다는 다리
[제6회 풀꽃문학상 젊은시인상 수상작]
얼띤感想文
시제 분홍 당나귀는 시인이 말한 얼음 조각을 키우는 마음을 은유한 문구겠다. 여기서 시인이 말한 내 왼쪽 얼굴과 내 오른쪽 얼굴은 모두 지향하는 바가 같다. 내 왼쪽 얼굴은 이미 한 세계관을 이룬 별의 자리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왼쪽 얼굴을 보고 가는 내 오른쪽 세계관은 자주 바뀌다가 어느새 파교를 건너 오색 고깔에 필묵을 든 달이 봉우리 위 솟아오름을 본다. 꽃씨 대신 얼음 조각을 키우는 일은 어쩌면 내 왼쪽 얼굴로 보면 슬픈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내 왼쪽 얼굴 내 오른쪽 얼굴로 분간해서 시인은 말했지만 결국은 시인은 지향하는 삶이라는 것 파지와 고지서가 얽힌 방 나른한 연필 끝으로 돌아와 제 그림자를 밟고 있는 분홍 발굽이다. 산경, 해경 괴기 발랄한 그 어떤 이야기에도 미혹되지 못한 일이지만 역시 바람은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에 대한 그 열연한 마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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