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 =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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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
=김행숙
나는 유리창을 닦다 말고 딴생각에 빠졌다. 나오며...... 반은 맑고 반은 흐린 풍경을 보았다. 물이 얼다 말면 어떻게 될까, 그쯤은 나도 안다. 풍경은 같은 풍경,
같겠지만 같은 풍경이 아니다.
얼음이 녹다 말면 어떻게 될까, 나는 늘 생각하다 말지. 불이 붙다 말았으면 내 사랑은 얼마 동안만 따뜻할까. 안 탄 곳은 하나도 뜨겁지 않을까. 타지 않은 곳이면 내내 멀쩡할까.
500원짜리 동전을 주우려고 허리를 구부리다 말고 또 생각에 빠졌다, 나오며...... 동전 중에서 제일 큰 동전, 그쯤은 나도 안다. 100원짜리 동전이 세상에 나온 첫해* 나는 태어났다. 1원짜리 동전이 시장에서 사망한 그해** 그 아이는 훔친 동전들로 상점에서 무엇을 살 수 있었나, 무엇은 절대 살 수 없었나. 나는 아이의 등을 그네처럼 세게 밀고 되돌아오면 또 세게 밀었다. 그 상점에서 동전을 건네받은 붉은 손들은 몇 개, 몇백 개, 몇천 개 둥근 고리로 이어지며 아직도 불어나고 있을까. 오늘도 피에 젖은 아기들이 세상의 검은 가지 위에서 시시각각 울면서 피어나듯이.
아아, 다들 잘 살고 있나요? 나는 왜 동전 생각만할까. 내 사랑이 꺼지다, 마지막 숨소리처럼 불이 붙으려고 하는데..........
“흐린 뒤 맑음”이라고 했는데....... 나는 유리창처럼 서서 날씨는 계속해서 변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일기예보를 궁금해하지만 그렇군, 누구의 말도 다 믿지는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그쯤은 나도 안다,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을 나는 또 생각하기 시작한다.
얼띤感想文
오늘 여기, 비가 참 많이 온다. 말 그대로 억수같이 온다. 잠시 차에 내렸다가 무엇 하나 방금 내려다 주고 금시 차 문을 닫고 다음 행 가려는데 차 안이 흥건해져 버렸다. 오늘 같은 날은 시 좋아하는 사람은 시가 절로 쓰일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위 시는 기승전결, 짜임새 잘 맞춰 쓴 시다. 1연은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 시를 읽고 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를 건가, 반은 맑고 반은 흐리고 하듯 거기서 더 나가 물이 얼고 아니면 얼다 말면 어떻게 될까 시에 대한 고체성과 견고에 대한 시인의 마음을 그렸다.
두 번째 단락은 시가 미치는 영향이겠다. 그러니까 얼음이 녹다 말면 어떻게 될까? 완벽한 지도력을 내심 꿈꾸지만, 한 편의 시로서 말이다. 보다가 말면 나는 또 무엇이 되고 너는 또 어떤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가 하는 시인의 아픔 마음을 내 보이는 것 같은 그러다가 불이 붙다 말았으면 얼마 동안만 따뜻할까, 시의 존재성을 부각하며 사랑에 대한 집착도 없지 않아 내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타지 않은 곳이면 내내 멀쩡할까, 숙련된 작업에 대한 결과를 보고 싶지만 혹여 잘못된 과정으로 타인의 아픔까지 미리 조망해 보는 길이겠다.
세 번째 단락은 더욱 재밌게 썼다. 동전 얘기다. 시의 구체와 시의 원만성을 논하면서도 시인의 생애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으므로 그 동전처럼 돌고 도는 생존력과 존폐의 위기까지도 거기다가 경제성까지 논한 시의 압축적인 삶의 본질을 거론한다. 아아, 다들 잘 살고 있나요? 눈물이 난다. 이 한 마디 말에서 그러니까 인간세상 잘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노력에 비해 아직도 어떤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옹다옹 시계의 범주를 돌고도는 사람도 얼마나 많을까 말이다.
100원짜리 동전이 세상에 나온 첫해가 1970년대다. 그러니까 작가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시의 근원 즉 뿌리를 내심 밝힌 셈이다. 1원짜리 동전이 시장에서 사망한 그해 2004년이다. 아마 작가가 등단한 시기가 아닌가 얼추 생각해본다. 훔친 동전들로 상점에서 무엇을 살 수 있었나, 이는 굳이 동전을 훔쳤다기보다는 동전으로 내가 산 것과 내가 얻은 것, 즉 교환의 매개체로 주고받은 과정에서 내가 얻고 깨달은 무엇이겠다. 모든 지식은 훔친 것과 같다 사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반드시 지불했을 것이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가장 기초적인 교환수단인 동전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결말, 시를 바라보는 타인은 날씨처럼 다가와 날씨처럼 또 가버린다. 그것처럼 일기예보를 궁금해하듯이 그러나, 그 일기예보가 다 맞아 들어갔던가, 누구의 말도 다 믿을 수 없는 시의 인식과 부재의 갈림길에서 늘 존재한다. 시는
그쯤은 나도 안다.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을 나는 또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시제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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