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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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김선우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 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으로도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된 날이야. 축복해.
얼띤感想文
시인의 시집을 들고 무작정 펼친 쪽 ‘몸살’이 언뜻 보인다. 요 며칠 몸살로 좀 앓은 건 사실이다. 오한과 재채기 나중에는 설사가 동반하였으며 입맛은 쓴맛으로 변해 있었다. 코로나였다.
코로나에 대한 나의 인식은 감기처럼 여태까지 보아왔다.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이다. 이번에 코로나에 걸려보니, 몇 년 전 독감으로 앓아누운 적도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아주 약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실지 감기처럼 아니 감기보다 한 수 낮은 어떤 지나가는 병처럼 말이다.
정부에서 요구한 예방주사도 맞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맞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줄곧 함께 한 가까운 친구의 사망을 보고 난 후 더더욱 믿지 않았다. 백신에 대한 불신 말이다. 친구는 1차 맞고 2차에 세상을 달리했다. 지병도 없었으며 몸도 꽤 좋은 친구였다. 헬스 대회에 나가 입상까지 한 친구라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가까운 사람이 백신을 맞고 죽었을 때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 있다면, 항상 죽음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죽음이 언제 어느 시기에 올지 모를 일이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위 시에서 의미가 닿는 문구가 하나 있다.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시의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인간사 마찬가지다. 신은 죽음에 앞서 몸부터 기능을 없앤다. 굳어가는 것 굳음으로 말이다. 아무리 의욕적인 사람도 모든 생활 반경은 줄어들며 사회에 공헌할 수 없는 몸은 스스로 곡기마저 끊어버린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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