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인 /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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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인
=신용목
일생을 눈 감고 살아온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간다. 그 지팡이 위태로워 잡아주고 싶지만 이미 더는 내려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바닥에 닿아 있었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고 싶어 안으로 깊어졌을 눈, 작은 몸 어디에서 녹아 풍금 소리를 만드는지 그가 지날 때마다 노랫소리 떨어져 지팡이가 눌러놓은 자리를 동그랗게 메우고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나 구릉을 지날 때도 나는 발끝을 보지 않았다. 가야 할 곳은 언제나 멀리 있어 내 속에 노래를 키우지 못했다. 폭 크게 서둘던 내 걸음 잠시 찬송가 밑에 세워둘 때 앞발의 뒤꿈치가 뒷발의 앞코를 넘지 않으며 나아가는 풍금의 건반이 희다. 문득, 세상의 빛이 사라져 모두가 비명을 쏟으며 발을 섞어도 노인은 홀로 유유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면서 노인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비명을 안고 잠들어 있다.
얼띤感想文
책상에 까마득히 놓인 시집 한 권 지금 보고 있소 누구도 열어보지 않을 그 시집을 말이오. 한 사람이 이 세상 잡고 버티며 살아온 한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겠소 겉으로 읽는 것 너머 속에 담겨 있는 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고 넓을 것이오 나도 이 사람처럼 작고 깊은 마음 하나 숨기려다가 그의 노랫소리, 지팡이 삼아 들어 보곤 하오. 시 쓰다 간혹 막힐 때쯤 나의 발화점을 다시 들여다보곤 해서 하지만 매번 가야 할 곳만 생각하다 그만 그의 속, 본뜻을 잃기만 했소 서둔 이 마음 걸음이 그 시집 아래 쓰는 내 발걸음이 미치지 못해 다만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내 종이만 희오 문득, 세상 모든 경전이 사라져 소리가 소리 같지 않아도 그 시집은 홀로 책상 위 있을 것이오 우리가 보는 것 너머 닿지 못한 것까지 그 시집은 보고 있을 것이오 그 시집과 달리 다른 뜻으로 읽겠지만 말이오
노인은 주름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이미 한세상을 누빈 마음이다. 꽃잎에 쓴 글자가 있다면 그 꽃잎의 뒷면을 보라, 주름이 생겼을 그 주름 노인이다. 풍금 소리와 풍금의 건반을 생각하면, 희고 검은 자리를 볼 수 있다. 마치 건널목 지나는 한 아이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시인이 보인다. 우리가 늙는다면 우리가 이미 바닥에 닿을 수 있다면 지팡이는 보조 수단이겠다. 지팡이 없이 걸어갈 수 있는 바닥은 얼마만큼의 넓이로 다가올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비명이 비명으로 들리지 않는 비석의 울음으로 앞발의 뒤꿈치가 뒷발의 앞코를 넘지 않는 그러나 뒷발의 앞코가 이미 앞발의 뒤꿈치를 벗어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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