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변천사 / 최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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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변천사 / 최승철
그림자가 가지를 뻗는다 / 낡은 임대 아파트의 벽면을 쓰다듬는다 / 꿈틀거리는 나뭇가지마다 더듬이가 맺혀 / 그녀의 방을 향해 잠입해 들어간다 / 그림자는 액자와 달력 위로 뻗는다 / 형광등 빛을 채밀(採蜜)하기 위해 벽면을 핥는다 / 가만히 편광 사이로 그녀가 손을 내밀자 / 다른 벽지 위로 달아나 앉는다 / 환부를 도려내는 의사처럼 / 붉은 등을 단 경찰차가 도심으로 달려간다 / 취한 사내들이 거리를 가로질러 간다 / 고함을 지르며 쓰러진다 / 그림자는 실체보다 더 깊게 쓰러져 / 자신의 내부를 검게 태운다 / 잔바람에 그녀는 그림자의 근육을 주시한다 / 그녀의 상체가 그림자의 나뭇잎들을 잡으려 하자 / 투둑, 몸 전체가 밑으로 쏠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 그림자의 뼈마디가 뒤틀려 / 침대 스프링이 한 칸 더 낮게 내려앉는다 / 그녀의 없는 다리가 허공을 향해 나간다 / 울컥. 부딪쳐 신음 소리 나는 곳마다 / 그녀의 비틀어진 입술에서 / 그림자가 난다 // 나를 한번 비워 내기가 이토록 힘이 들었다
얼띤感想文
하나의 말놀이다. 어쩌면 詩 쓰기가 이렇게 간단명료簡單明瞭할 수도 있다는 좋은 본보기다. 그림자와 그녀와 관계 속에서 얘기는 전개한다. 즉 그녀는 그 그림자(詩)를 읽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를 역으로 그림자가 詩의 主體로 그녀는 詩의 客體다.
중간에 환부를 도려내는 의사나 붉은 등을 단 경찰차가 도심으로 달려가는 것 그리고 취한 사내들이 거리를 가로질러 가고 고함까지 지르는 일은 詩 인식認識의 부재不在와 詩 환부患部를 시해詩解(尸解)하는 節次 즉 읽는 과정을 잘 묘사描寫한 장면이다.
이 詩에서 옥에 티를 얘기하자면, ‘신음 소리 나는 곳마다’ 이를 ‘신음이 이는 곳마다’로 했으면 어떨까 싶다. 우리말은 다량의 한자가 많이 들어가 있어 중복적인 데가 어디 한두 군데일 까만, 물론 詩的 허용許容이라는 것도 있다. 떨어지는 낙엽, 전단지, 등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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