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뜯다 /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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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뜯다 / 정끝별
사랑을 할 때 나는 뜯지 않았다 / 꿈에도 석류알처럼 군침을 머금었으니
사랑에 기다릴게 언약은 마른침처럼 얇아져
다물 때마다 가물어지는 오뉴월의 고백과 / 터지자마자 갈라지는 자정의 췌사 그러나
손가락은 망설임의 말꼬리에 골몰했다 / 손가락의 골몰은 피를 보고서야 그쳤다
오늘이 너였다면 다른 날이 나였을 텐데
엄지와 검지 끝으로 말없음표를 뜯는다 / 끝에 끝을 만질 때마다 뜯기는 기약들
어떤 이별을 완성하려 손을 댔을까 / 피를 감싼 내 연한 영혼의 맨살갗을
얼띤感想文
詩題 ‘입술을 뜯다’는 곧 詩를 뜯다 다. 詩는 모두 7연이며 12행이다. 한 연씩 한 줄로 엮었다. 행 나눔 없이 모두 붙여 나열했다. 종잇값이 만만치가 않다. 물가가 너무 올랐다.
詩 1연을 보면 사랑을 할 때 나는 뜯지 않았다. 여기서 사랑은 詩人이 낸 詩와 혹은 다른 詩와의 소통疏通이다. 석류알이라는 詩語가 참 재밌다. 석류는 과일의 일종으로 석류(石榴)로 표기하지만, 여기서는 석류(石流)처럼 읽어도 관계없다. 돌의 흐름을 우리는 읽고 있는 것이며 詩人이 쓴 詩가 마치 석류처럼 군침 돌게끔 하는 그런 미각적인 포인트도 함께 심은 것이다.
詩 2연을 보면 사랑에 기다릴게, 여기서 처소격조사 ‘에’를 유심히 보자. 그러니까 써놓은 詩에 독자讀者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언약은 마른침처럼 얇아져 종이 한 장 써놓은 詩는 얇기 그지없다.
詩 3연, 오뉴월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나는 속담이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다물기만 해 봐라 하며 바랐고 앉은 詩人 그 고백, 터지자마자 갈라지는 자정의 췌사 자정은 자정(慈情)으로 인자한 어머니의 정 같은 췌사(贅辭)다. 췌사는 쓸데없는 군더더기의 말이다. 여기까지는 여전히 詩에 대한 부재不在다.
詩 4연, 손가락은 망설임의 말꼬리에 골몰했다와 손가락의 골몰은 피를 보고서야 그쳤다. 골몰(汨沒)은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집중集中한 것을 말한다. 손가락을 한자로 표기하면 지(指)자다. 지만 보더라도 동음이의어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파생해서 생각하면 지면과 지면에서 가리키는 저 멀리 너, 망설임의 말꼬리는 여전히 詩에 대한 不在며 골몰의 피는 詩 인식認識에 해당한다.
오늘이 너였다면 다른 날이 나였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읽었다면 나는 떠난 것이고 너는 또 다른 날 기약하며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엄지와 검지 끝으로 말없음표를 뜯는다. 여기서 엄지는 엄지(嚴旨) 임금의 엄중한 명령 검지는 검지(檢知) 검사하여 알아냄 즉 시와 칼날의 오가는 길목에서 아! 이 정도면 됐어, 말없음표가 나와야 詩의 世界에 들어간다.
끝에 끝을 만질 때마다 뜯기는 기약들 여기서도 참 재밌는 표현이다. 끝은 詩의 인식認識 그 끝에서 또 다른 끝과 다음을 잇는 끝을 계속 기약하는 詩人의 자세를 볼 수 있다. 즉 詩의 生命力을 말한다. 이렇게 뜯어 걸어놓으면 詩集은 좀 더 잘 팔릴까 싶기도 하지만, 詩人의 명성은 더 높이리라 본다.
어떤 이별을 완성하려 손을 댔을까, 어떤 이별을 보고 싶은 것일까, 물론 조개와 명패와 또 다른 생명선生命線이겠다. 가령 파이프라인 같은 것 영원히 줄지 않는 통로 그리고 자유겠다. 피를 감싼 내 연한 영혼의 맨살 갗을, 피를 돌게 한 이 연한 지면 한 장에 여태껏 목숨 걸고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오늘도 詩人의 피부를 몰래 들여보았다.
詩 잘 感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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