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라는 종족 /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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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라는 종족 / 송재학
메아리*라는 초록 번역기 앞에서 나는 종종 사랑의 입맞춤을 했다 사랑아, 소리쳐 불러보면 여름 산의 녹음기 속으로 번지는 메아리는 음울하다 내 말을 그대로 되감기만 하는 헛된 사랑은 울컥하는 소용돌이이다 어떤 골짜기는 쫑긋했겠지만 청맹과니 메아리 속에서 사랑은 흰 피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을 번역할 때 자동기계의 목소리는 혼곤하여서 나는 다시 골짜기를 쳐다본다 메아리라 여겨졌지만 사랑은 나무에 새기는 나이테와 다르지 않아 흔적만 남는다 초록에 적시는 사랑이라는 말의 다른 표정이 필요해서 나도 메아리를 부른다 굵기가 다른 연필, 색깔이 다른 알약을 움켜쥐면서 내 육신마저 메아리를 닮아 환청이 더 많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제3권에 담긴 ‘나르키소스와 에코’를 차용했다.
얼띤感想文
詩人께서 친절히 각주를 다셨다. 하지만, 이 詩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각주에 관계없이 무난無難하게 읽을 수 있다.
詩語를 보면 詩人의 시작법詩作法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언어유희적言語遊戱的 감각感覺을 볼 수 있음이다. 실례實例로 초록 번역기를 들 수 있겠다. 물론 詩人께서 다룬 詩語는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詩人이 쓴 다른 詩集에서도 여러 군데 발견된다. 가령 늪의 내간체를 얻다에서는 운문보가 그 좋은 예다. 하나하나 열거할 순 없지만 꽤 많다.
여기서 사랑은 詩 認識을 제유提喩 및 대변對辯한 詩語다. 여름 산이라는 표현 왜 겨울 산이라든가 가을 산을 쓰지 않는 것일까? 마치 열었다는 어떤 그런 느낌 그러니까 계절의 그 여름이 아니라 열어 본 그 시집은 하나의 산이다.
메아리는 詩 접촉接觸에 대한 오고 간 반향反響이겠다. 헛된 사랑은 詩에 대한 認識 不在를 흰 피는 말 그대로 까마득한 不在다. 자동 기계는 詩 그 자체를 말한다. 우리가 읽을 때마다 자동으로 들려주는 반복적反復的인 기계장치다.
골짜기는 주름 진 讀者다. 詩를 파악把握해 들어가는 어떤 몸짓들이다. 나무에 새기는 나이테와 다르지 않아 흔적만 남는다. 오히려 세월만 더하지 다시 말하면 어떤 흔적처럼 다녀간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재다.
초록이라는 말도 재밌다. 아까 초록 번역기에서 유래했다. 항상 푸름 그리고 좀 더 나아가 덧붙이자면 시초다. 여기에 적실 수 있는 소재는 역시 메아리다. 굵기가 다른 연필, 그러니까 시의 형식과 소재 및 각기 다른 반향을 불러올 수 있는 다른 詩人의 울음이다.
색깔이 다른 알약을 움켜쥐면서 어떤 이종의 처방 같은 것, 詩人이 눈독 들여 볼 수 있는 다른 어떤 世界이겠다. 그러면 환청幻聽은 메아리처럼 온다.
詩 잘 感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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