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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올가미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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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3회 작성일 24-11-1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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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

=김소연

 

 

    어떤 시를 읽었다 아침에 날아든 소식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 자세로 밤까지 앉아만 있다가 그 사람은 홀연히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떤 소식이었을까 시가 말해주지 않은 것을 궁금해하며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사람을 밤새 기다리다가 홀연히 아침이 와버린다는 것이

    지금 쓰고 있는 이 시의 첫 연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시를 읽는 한 사람은 이 페이지를 쉽게 덮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궁금한 것 없이 다음 세계로 가뿐히 가버린다면

    나는 그 시를 이어서 쓸 수 있으리라 그 사람이 어디로 갔을지를 우선 써야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라도 눈을 붙였다고 써야 한다 슬리퍼를 신었으므로 발이 시럽지 않게 한여름이라고 적어야 한다

    그 사람이 아주 먼 곳에 갔다고 하고 싶지만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 길가를 걷고 있다 쓸 수는 없다

    누군가를 찾아간 것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고 누군가를 찾아간 것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복도를 서성이며 조금 기다려보기로 하고 누군가를 찾아간 것이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준 것이다 두 사람이 현관 문턱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얼굴을 읽고 누군가를 찾아간 것이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준 것이다 누군가가 외투를 차려입고 팔에 걸치고 있던 또 다른 외투를 건네주고 누군가를 찾아간 것이다 누군가를 불러내려다 말고 여기까지 내가 왔구나 하고 여기까지 와볼 수 있었던 것이구나 하고 동네 입구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벌컥벌컥 마시고

    마라토너처럼 활달한 그의 목젖으로 이 시를 끝내게 되면 그런 시를 읽었던 것을 까맣게 잊게 될 것이다 내가 시를 쓰는 동안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시를 쓰느라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시집 촉진하는 밤 87-89p

 

   얼띤 드립 한 잔

    어떤 벽을 보았다 무심코 걷다가 어느 바위에 앉아 쉬는 그를 보았다 무슨 목적이 있었는지 다시 걷는 사람, 투명한 햇살 아래 걷는 것도 잠시 얼굴이 이지러질 정도로 앞이 가로막은 사실에 믿기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개가 짖는 막사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다시 바깥을 본다 여전히 세상은 조용하고 썰렁하기만 하다 일곱 시 밥을 안친다 밥이 되면 수프처럼 죽을 슬고 한 그릇 오롯이 담아내어 아침을 먹고 풀밭을 거닐었다 봄이 오니 꽃이 피고 가을이 오니 꽃 지고 씨앗은 어디론가 또 날아간다 집에 들어와 책상에 앉아 오늘 본 풀들의 이야기를 쓰며 이렇게 적는다 꽃은 아름다웠다 꺾을 수 없는 저 풀꽃에 내 손은 순간 얼어 있었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빈 밥솥을 씻고 줄넘기를 하고 웃는 얼굴과 마주하며 물동이를 들고 앉아 그냥 물맛을 음미하는 것으로 다시 하루를 정리한다 그 사람은 언제쯤 여기를 지나갈까? 누구였다 풀 맛을 아는 소처럼 느긋하게 발을 떼며 걷는 듯한 어떤 낭만을 보았다 훗날 검정 송아지를 타고 드넓은 초원을 누비며 꼴을 베는 일을 낱낱이 기록했다 누구였을까? 땡볕에 앉아 얼굴이 다 타도록 여름을 만끽하는 색다른 얼굴을 그리워하는 거처럼 피복만 다 해졌다 누구였든가, 자리에 일어서서 기계에 등을 대고 문 앞을 바라보며 뜻있는 눈길을 섞었다 아직도 정정하지 않은 걸음으로 마구 씻는 쌀알에 뜨물까지 흘려보냈던 세월 앞에서 세상은 여전히 조용하다 지옥이 따로 있을까 굳게 닫힌 문 뒤에 앉아 나부낀 풀을 보며 풀을 뜯고 있는 양의 울음을 바닥에다가 칠하고 또 칠하고 덧칠하다가 오늘도 이불을 당겨 잠을 청하는

    나는 정말 몰랐을까!

 

    시를 읽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물아일체物我一體였다. 부부 일심동체이듯 종이 씨는 그 사람만 보고 있었다. 내내 그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거기에 간 것인지는 대충 느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찾아간 것은 분명한 것이었고 그것은 마치 동네 편의점에 들어간 것처럼 편했으리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순간 내리는 눈발에 나는 또 생수 한 병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마라토너처럼 내 목젖을 두드렸다. 결국, 그 사람은 돌아왔고 나는 악수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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