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 =김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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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
=김종연
과거가 얼마나 지나갔는지, 미래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하는 너는 사랑스러웠다. 어디에 쓸 수도 없이 예쁘기만 한 걸 좋아하니까. 그러고 보면 세상은 사실 아주 명쾌한 게 아닐까? 한 개체가 전체의 출현 가능성이 되잖아. 여기에 내가 또 있을 수도 있다는 믿음과 너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기대. 너의 얼굴을 만지면 더욱 환한 발광체가 되고, 우리는 물질과 발화점 이상의 온도와 산소의 구성으로 타오르면서 흔들리게 되겠지. 마주한 얼굴을 붉히면서, 불을 쬐던 손이 점점 뜨거워지는 공포를 참아 가면서. 사랑과 슬픔, 사랑과 우울, 사랑과 아픔, 사랑과 피로, 사랑과 기쁨, 사랑과 도시 모두 두 글자밖에 다르지 않지만 일부러 틀리게 썼다는 걸 서로 아는 채로. 끝까지 부릅뜬 눈을 감지 않으면서. 근사한 개체 사이에서 사랑의 한 계통이 발생하고 있다.
민음의 시 305 김종연 시집 월드 95p
얼띤 드립 한 잔
정물=崇烏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격離隔은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오히려 처음 마주할 때가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 하나가 서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을 때 솔직히 가슴은 뜨끈하게 닿아서 말은 없어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그의 붉은 눈을 보기까지는 시간 채 걸리지도 않았으니까 바깥은 러우전쟁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오고 북은 탈북을 빙자해서 전쟁에 참관하고 있을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땅에 떨어졌고 이를 세우지 못한 것에 그 어떤 반론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당연지사였다 어쩔 줄 모르는 낭패에 울상, 낭패에 공포, 낭패에 좌절, 낭패에 통증, 낭패에 초조, 낭패에 불안 같은 것으로 맥박은 가파르게 뛰고 있었으니까 이미 던진 일에 대해서 어떤 착오가 있었고 선택의 폭은 다양한 증상으로 발기되고 있었다 몰랐을까 냇물은 정해진 시간 안에서 곱게 흐리기만 한데 아직도 머리를 싸매고 양손은 북채를 든 채 북춤을 추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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