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오바디스 =이영광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꾸오바디스
=이영광
날 사탄이라 욕하고 행패 부렸던 택시를 다시 타고 말았다.
나도 점잖진 못했지만,
소규모 베드타운의 비극이다.
그자, ‘베드로맨’은 이제부터 잘 좀 지내보자고
아, 원수를 사랑하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웃었다.
나는 정신을 잃느니 그냥 사탄 하겠다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촛불도 없이 헤매고 다니는
당신 교회의 ‘우리 장로님’이라는 이나 얼른 좀 사랑해주라고 말했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원수들이 함께 사는 곳이야말로 지옥이고
원수를 만들고서야 사랑을 싸지르는 지복의 착란 속에 사느니
차라리 선량한 백치가 되겠으며,
당신이 순교자가 될지 안될지 알 도리는 없지만
날 지옥에서 내려준다면, 백번 지각을 하더라도
깁스한 다리를 끌고 걸어서 ‘로마’까지 가겠노라고 말했다.
창비시선 318 이영광 시집 아픈 천국 30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로 쓴 ‘꾸오바디스’는 폴란드 작가 시엔키에비치(Sienkiewicz, H.)가 지은 장편 역사 소설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뜻이다. 여기서는 소리 은유로 사용한다. 그러니까 꾸오 뭔가 꿔달라는 듯한 느낌과 바디스 몸과 상체를 의미하는 말로 쓴 것이다. 꿔달라는 의미 또한 꿈을 그리는 것과 얼마 동안 빌려 쓰는 것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시를 읽는 것은 시가 순간 삶을 잇는 것이며 그 삶은 독자의 몸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 되니 ‘꾸오바디스’라 해도 되겠다. 날 사탄이라 욕하고 행패 부렸던 택시를 다시 타고 말았다. 사탄은 죽음이 머무는 곳이다. 탄에 대한 느낌은 숯(炭)과 총알로 쓰는 열매나 과실(彈), 탄식하는 것과(嘆) 이를 읊는(歎) 일로 대신에 한다. 욕하고 행패 부리는 택시는 시를 고른 자 시 객체다. 소규모 베드타운의 비극이다. 소규모는 소는 트이다 소통한다는 뜻에서 소疏의 의미를 담고 규모規模는 본보기가 될만한 틀이나 제도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밑은 완벽하다. 그자, ‘베드로맨’은 이제부터 잘 좀 지내보자고 눈치껏 보낸다. 베드로맨 재밌는 시어다. 베드 진정한 베드 신과 길 로路이자 늙을 로老 하지만 시를 읽고 있으니 일할 로勞 그 사람, 마! 좀 이해해도, 뭐 이런 뜻이겠다. 아, 원수를 사랑하란 말도 있지 않고 나는 그냥 웃었다. 나는 정신을 잃느니 그냥 사탄 할래, 니가 뭐 안다고 내 마음을 이해하겠니. 그러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촛불도 없이 헤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피안 즉 시의 세계를 대변하며 촛불은 주어진 역량을 해결하고자 온갖 마음을 다 들이는 어떤 평화적 시위라도 해야 했으나 그냥 막 지나갔겠다. 당신 교회의 ‘우리 장로님’이라는 이나 얼른 좀 사랑해주라고 말한다. 교회는 가르치며 배우는 모임으로 시를 상징한다. 장로는 길 장長이자 마당 장場으로 로는 아까 쓴 것으로 대체한다. 장로는 사탄과 얼추 비슷하게 엮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인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원수들이 함께 사는 곳이야말로 지옥이라 단정한다. 뭐 이해를 못 하니까, 생지옥이 따로 없겠다. 지복의 착란에서 지복至福은 더없는 행복이지만 지복紙福도 함께 한다. 백치는 검정과 대조적으로 맹하다. 맹해서 맹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뛰어넘고 사니 내나 그것이 그것이고 이것 또한 이것이니 더는 논하지 말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옥과 지각도 자세히 보면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으며 깁스한 다리 절뚝거리는, 사물의 이치 또한 다 업고 지며 가야 할 업보로 여기며 로마로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로마는 이탈리아 그 로마가 아니라는 것쯤은 익히 알겠고 그 뜻은 말이 가야 할 길임을 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