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보리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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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보리
=전동균
아버지 화장 모시던 날, 시월인데 북천 고추바람 유독 매웠더랬습니다 아따, 꼭 그 양반 성깔 같네, 당숙이며 사촌형님들 덜덜 떨다가 육개장에 소주잔 적시러 식당으로 몰려간 뒤에 아버지 몸은 굴뚝을 나와서도 한참을 펄럭대다 살얼음을 하늘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는데요 둘째도 납작보리*라고, 나자마자 외면당한 소현이, 여섯 살배기 그 어린 것이 제 엄마 옷자락을 꼭 붙잡고는 서럽게 서럽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기특해라, 장손 씨는 다르데이, 니 그래 할배가 좋더나? 관을 안고 몇 번이나 쓰러졌던 큰 고모가 흐뭇한 목도리를 감아주며 묻자, 더 크게 엉엉대다 잔뜩 코 막힌 소리로 아니요, 피카츄 인형을 잃어버렸어요
*‘딸’을 뜻하는 경상도 지방의 은어.
창비시선 375 전동균 시집 우리처럼 낯선 29p
얼띤 드립 한 잔
죽은 자와 산 자가 늘 함께 하는 세상, 아니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물로 보는 것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도 피카추처럼 굳은 손을 본다. 북천에서 부는 바람처럼 아직도 한겨울이고 곧 깨뜨릴 것 같은 살얼음인 듯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닿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마디로 대처럼 굳었다.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한 경계를 벗어나는 일은 죽음만큼 고되다. 고통스럽다. 피카추를 잃은 손처럼 아무것도 모른다. 찬 바람은 불고 벚나무 이파리는 여전히 나부낀다. 얼마 남지 않은 잎이 간댕간댕 가지에 매달려 있다. 또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차 한 대가 나가는 카페에서 한차례 비가 내리고 세상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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