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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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김정수
막내가 택배로 보내준 칡즙, 양달 냄새 진하다 야산 초입 오리나무에 한 팔 걸친 덩굴 밑으로 몰려다닌 꺼병이 쪼르르 흘러 다닌다 몸은 오래된 타이어, 길의 이력 더듬을 새 없이 무너진다 찔레나무 사이 가로지르던 유혈목이 다리에 붉디붉다 피가 곤한 날들 많아질수록 손발톱 들고일어난다 형마저 아프면 안 돼, 증상 없이 찾아온 농담이 숨을 곳 찾는다 외로운 저녁이 잔을 비우는 사이 촬영소사거리에 잠시 거처를 정한 달, 막내가 해진 타이어 갈아 끼운다 타이어 한 짝 갈아 끼워도 소리가 다르다 다 자란 유혈목이 발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난다 포행하기 좋은 밤이 간간이 찾아와 곁에 머문다
혈육은 해독되지 않는다
시작시인선 0326 김정수 시집 홀연, 선잠 59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해독’은 독을 푸는 일 해독解毒과 풀이하여 읽는 행위인 해독解讀도 있다. 여기서는 둘 다 쓰인다. 시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동생이 보내준 칡즙으로 보양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몸의 독기를 풀어내는 해독解毒과 같고 평상시 대한 동생의 마음에 비해 따뜻하게 닿는 건 풀이할 수 없는 어떤 정을 갖게 한다. 시 간간 제유로 쓰인 시어가 참 멋있게 닿는다. 가령 칡즙이라는 말도 칡 갈葛에 대한 갈등이 은연중에 삶의 고단함을 숨겨놓은 듯하고 양달에서 이쪽과 저쪽 모두 볕이 든 양 따스함을 드러내 보인다. 야산 초입이라는 말, 들처럼 들 가까이 보이는 언덕은 우리가 넘겨야 할 장애와도 같지만 그리 쉽게 깨우치기에는 또 수월하지 않은 것임에는 분명하고 오리나무에서 나 오吾에 이치를 다룬 리理에 펼칠 라羅나 벗을 라裸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진리를 둔다. 꺼병이, 하늘 나는 새 꿩의 새끼로 은유한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그렇다 곳곳 채울 일은 만무하다. 타이어는 신발을 상징한다. 새롭거나新 귀신이거나神 하지만 믿음信이 가득한 지면에서 발發한 것들은 모두 신발이다. 길의 이력을 더듬을 새 없이 무너진다. 갈등과 언덕 그리고 꺼병이에 대한 진솔한 시인의 마음이다. 찔레나무 사이 가로지르던 유혈목이 다리에 붉디붉다. 유혈목이는 뱀으로 곡선을 상징한다. 직선과는 대조적으로 시의 고체성과도 구별된다. 피가 곤한 날들 많아질수록 손발톱 들고 일어난다. 피는 겉인 피복을 은유한 것이라면 손발톱은 지갑으로 각지覺知를 묘사한다. 농담은 농담이겠지만 글의 짙고 옅음의 정도다. 촬영소사거리라는 말도 재밌다. 굳이 열거하기에는 손이 아프고 유혈목이 발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난다. 드디어 막장으로 가는 길 포행布行은 참선參禪하다가 잠시 방선放禪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길 그러니까 깨달음에 구멍이 뚫린 것이니 아니 구멍을 뚫었다고 해야 하나 에구 좋겠다. 혈육은 해독되지 않는다. 다 뜯어놓고야 마는 배 하얀 저 까치 빠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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